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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아물지 않은 영혼의 상처 영화 ‘22’22명 육성 담은 한·중 합작 다큐
연합뉴스  |  yunhap@yunha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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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16  17: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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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작고한 마오인메이 할머니는 본래 한국 사람이다. 할머니의 한국 이름은 박차순.

부모님은 가난 때문에 중국으로 왔지만, 할머니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어린 딸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할머니는 7살이 되던 해 민며느리가 됐고 18살이던 1941년 일본인의 꼬임에 속아 양말공장에 일하러 갔다가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갔다.

박차순 할머니는 어릴 때 기억력이 무척 좋았다고 한다. 어떤 노래든 들으면 바로 따라불렀다고. 아흔을 넘기면서 기억이 가물가물해졌지만 어릴 때 부르던 고향 노래 몇 소절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아리랑’과 ‘도라지’다.

어색한 발음이지만 분명 우리가 익히 아는 ‘아리랑’이다. 할머니의 서툰 아리랑은 한국 관객의 가슴 속에 깊고 묵직하게 퍼질 듯하다.

한중합작다큐멘터리 ‘22’는 중국에 생존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육성을 담담하게 담아냈다. ‘22’는 2014년 촬영 당시 중국에 생존한 피해자 할머니의 수를 의미한다. 궈쿼(郭柯)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은 22명의 목소리를 모두 담고자 했지만 피해 할머니들은 대부분은 입을 열지 않았다. 비교적 촬영에 협조한 할머니는 박차순(1922∼2017)·린아이란(1915∼2015)·리메이진(1926∼)·리아이롄(1928∼2018) 등 4명이었다.

“여자들 옷을 벗기고선 강제로 하라고 했어. 안 하면 입에다 형구를 채웠어. 억지로 시키고 안 하면 때렸어. 그렇게 2년 정도 잡혀 있었어…”

카메라 앞에서 위안소 이야기를 하던 린아이란 할머니는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결국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이 이야기 그만할래”라며 울먹였다.

박차순·린아이란 할머니뿐 아니라 촬영에 응한 할머니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떨군 채 “인제 그만할게”로 말을 맺는다. 영혼에 깊게 팬 상처는 70년이 넘게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은퇴교사인 장솽빙씨는 1982년부터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돕고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도 요지부동이다.

피해 할머니와 운동가들의 목소리는 지금까지 단편적으로 소개됐지만, 일본군의 성폭행으로 태어난 중일 혼혈인의 육성은 좀처럼 공개되지 않았다.

궈쿼 감독은 별다른 기교를 사용하지 않고 피해 할머니와 이들을 돕는 운동가, 위안부 피해자가 낳은 중·일 혼혈인의 목소리를 담담하게 전달하지만 어떤 특수효과보다도 진실의 힘이 관객의 시선을 강하게 잡아끈다.

실제로 이 영화는 애초 개봉조차 불투명했던 작은 영화였지만 개봉 후 ‘위안부’ 문제에 큰 관심이 없던 중국 관객의 마음을 파고들었고 기적 같은 흥행 기록을 작성했다. 지난해 중국 개봉 첫날 손익분기점을 넘어선 데 이어 제작비의 60배가 넘는 수익을 올렸고 최종 관객 수는 약 550만 명에 달했다.

중국 개봉일은 8월 14일이었다. 이날은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날이자 ‘세계 위안부 기림일’이다.

이를 기념해 중국 개봉일을 8월 14일로 정했고, 정확히 1년이 지난 14일부터 국내 관객을 기다린다. 2014년 촬영을 시작할 당시 22명이던 피해 할머니는 현재 6명으로 줄었다. 전체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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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2’.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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