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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77>통도사 암자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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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27  22: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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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을 맑게하는 영혼의 세탁소

세상일이 힘들고 괴로운 날이면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길섶에는 들꽃이 미소를 짓고, 등성이를 돌아설 때마다 뻐꾸기가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노래를 들려주고, 우거진 솔숲에 이는 바람소리와 더불어 계곡에선 법어 같은 물소리가 탐방객들을 반겨주는 ‘암자로 가는 길’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암자는 대체로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 가야만 닿을 수 있다. 암자로 가는 길에서 만나는 새소리와 바람소리, 계곡물소리와 함께 걸어가면 그 길은 곧 심신을 맑게 하는 영혼의 세탁소가 된다.

각박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암자로 가는 길은 그 굽이마다 낭만이 서려 있고, 휘어진 길섶이 명상과 힐링의 순간을 건네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길이 선물해 주는 낭만과 힐링, 수행과 명상의 시간을 만나기 위해 국민체력센터(원장 이준기) 명품 걷기 클럽인 건강 하나 행복 둘 회원들과 함께 통도사 암자순례길을 떠났다.

처음엔 통도사 7암자 순례길을 걸으려다가 더운 날씨에 포장된 길을 걷는 것은 수행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수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축서암에서 비로암까지 이어진 소나무 숲 순례길을 선택했다.

 

   
▲ 암자로 가는 솔숲길.
   
▲ 비로암에서 바라본 영축산.


호젓한 산길, 머릿속으로 상상한 것 이상으로 아름다운 길이다. 솔향기가 그윽하게 밴 고즈넉한 숲길, 뻐꾸기 소리와 솔바람이 등줄기 흐르는 땀을 시원하게 씻겨 주었다. 탐방객들끼리 담소를 나누며 한 시간여를 걸어서 마침내 비로암에 도착했다. 암자치곤 꽤 규모가 컸다. 시야가 확 트인 비로암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왕유의 시 ‘종남별업’에 나오는 행도수궁처 좌간운기시(行到水窮處 坐看雲起時)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산길을 걷다 물이 다하는 곳에 이르면 그곳에 앉아 구름이 이는 것을 본다’라는 의미를 가진 말인데, 세상일이 힘들고 지칠 때 잠시 자연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관조해 본다는 속뜻이 담긴 시다. 오늘 암자순례길에 참가한 순례자들을 위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암자마다 깃든 아름다운 전설

비로암에서 500m 정도 내려오니 통도사 19암자 중, 가장 아름다운 암자로 불리는 극락암이 있었다. 고승인 경봉 스님이 주석하신 곳으로도 유명하다. 암자 입구에 있는 극락영지엔 무지개다리가 놓여 있었다. 물 위 활짝 핀 수련과 까맣게 익은 버찌를 총총 매단 연못가 벚나무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영축산 능선이 물밑에 잠겨 있는 연못의 풍경이 선경과 같다고 했는데 연못을 뒤덮은 수련으로 인해 물에 잠긴 영축능선을 볼 수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서축암을 지나 금와(金蛙)보살로 유명한 자장암으로 갔다.

   
▲ 극락암 연못 위에 놓인 무지개다리.


신라시대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가 통도사 건립 이전에 수도생활한 자장암에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 놓았다. 자장율사가 수행하고 계실 때마다 2마리의 개구리가 곁에서 머물자 법당 뒤 석간수가 흐르는 암벽에다 신통력을 발휘해서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어서 개구리를 살게 했다는 금와공(金蛙孔)이 지금도 남아있었다. 신심이 두텁고 정성이 지극한 사람들만 금개구리를 볼 수가 있다고 한다. 수많은 탐방객들이 금와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30여 년 전에 금개구리를 친견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정성이 부족해서 그런 지 뵙지를 못했다. 전설에 나오는 얘기처럼 금개구리가 벌이나 나비, 거미로 변하여 먼발치에서 중생들을 내려다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당 옆 자연석에다 모신 4m 높이의 마애불 앞에서 합장을 올리고 서운암을 향했다.

성파(性坡) 큰 스님께서 서운암을 손수 일구며 선농일치의 가풍을 이룬 암자다.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아 1991년부터 28년에 걸쳐 도자삼천불과 16만도자대장경을 조성하고 장경각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전통 천연 염색인 쪽염색 체험활동을 하기도 하며, 화학조미료와 인스턴트 식품에 찌든 대중들에게 건강한 식생활을 베풀기 위해 생약재를 첨가한 전통 약된장과 간장을 개발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보급 중이다. 그리고 서운암 주변 20여 만평 야산 중, 5만 평에다 100여 종의 야생화를 심어서 야생화 군락지를 조성해 놓았다. 암자 뒤켠에 된장을 삭히는 5000여개의 장독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해 놓고 있다. 암자에서 350m 정도 올라가면 장경각이 있는데 전각 안 미로식 통로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대장경을 다 읽은 듯이 몸과 마음이 맑고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 서운암 약된장 항아리들.
   
▲ 서운암 뒷산에 조성해 놓은 황매화길.


장경각에서 황매화나무가 도열해 있는 길을 따라 서운암으로 되돌아왔다. 꽃이 진 자리, 무성한 잎들이 여름 땡볕을 식히며 열매를 키우고 있었다. 자연의 섭리란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제 소명을 다하면 스스로 그 자리를 물러나는 저 조화로움, 말 한 마디 건네지 않고 탐방객들에게 삶의 이치를 일깨워 준다. 그래서 자연은 위대한지도 모른다.




◇큰 도는 늘 그 자리에 있다

통도사는 필자에겐 잊을 수 없는 곳이다. 대학 4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이다. 한창 임용고시 준비를 하다 머리도 식힐 겸 통도사 곁에 사는 친구와 함께 영축산 산행을 한 적이 있다. 통도사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백운암 근처에서 텐트를 치고 하루를 묵었다. 밤을 맞은 산 속의 기온은 초겨울 같았다. 추위와 배고픔을 함께 견뎌내기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때, 백운암 스님께서 건넨 따뜻한 음식과 법어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35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 스님의 얼굴과 존함은 기억나지 않지만 스님께서 베풀어주신 마음만은 내 가슴 속에 남아 있다. 계곡을 낀 통도사길을 내려오면서 어떤 것이 도(道)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삶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남을 위한 작고 여린 행위가 어쩌면 큰 도요, 사소한 베풂이 참되고 큰 길을 걷는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암자로 가는 길, 그 호젓하고 휘어진 길을 걸으며 세상일을 잊고 명상에 젖어보는 것 또한 힐링이요, 행복일 것이다. 자꾸만 백운암을 향해 뒤돌아본다.

/박종현(시인·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자장암 마애석불
자장암 마애석불.
자장암 법당 뒤 암벽에 있는 금개구리집
자장암 법당 뒤 암벽에 있는 금개구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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