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크기의 의미와 대학 통합
[기고]크기의 의미와 대학 통합
  • 경남일보
  • 승인 2018.09.1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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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욱(진주고려병원장)
 
문병욱


우연스럽게도 10여 년 전인 2006년에 나온 두 권의 책을 읽었다. 하나는 동아일보사 특별취재팀에서 연재한 기사를 책으로 묶은 ‘작지만 강한 대학’으로 ‘세계의 리틀 아이비리그’란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책에서는 4장에 걸쳐 미국의 동부와 중서부 명문대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의 32개 대학을 엄선하여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쿠퍼유니언대는 건축대 150명, 공대 500명, 미술대 250명 등 전교생이 900명에 불과하지만 건축대는 미국 최고의 수준으로 꼽히고, 하버드, 예일대, 프린스턴대 등 주요 대학 건축학과 교수의 상당수가 이 학교 출신이다. 또한 일본 아이즈대는 일본 후쿠시마현 아이즈와카마츠에 있는 4년제 대학으로서, 학과가 컴퓨터공학 하나밖에 없으며 영어를 학교의 공식 언어로 삼고 있는 특성화대학인데 취업률은 매년 97~100%이다.

또 한 권의 책은 교육 컨설턴트이자 학자이며 뉴욕 주립대 부총장을 역임한 조지 켈러(George Keller)가 쓴 ‘미국 최고의 대학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박중서 역, 뜨인돌)라는 책으로, ‘작지만 강한 대학 만들기 프로젝트’란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는 작고 이름 없는 시골 학교에서 단숨에 미국 최고의 대학이 된 엘론대학(Elon College)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이 두 권의 책에서 제시한 33개 대학들, 작아도 강한 이들 대학에서 보듯이 대학의 발전이나 명성은 그 크기만 가지고는 재단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근자에 경상대학교와 경남과학기술대학교의 통합 또한 다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양 대학은 2017년 국립대학 현신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연합대학 구축을 통한 통합을 추진하기 위해 한국생산성본부에 대학 통합용역을 의뢰했었다. 이 용역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양 대학 통합으로 재정규모로 전국의 중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고 나아가 연구중심대학 등으로 시너지효과를 재창출하여 지방대학의 생존전략이라 했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여기엔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내재해 있고 규모가 크다고 꼭 좋은 것인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바둑에서 회자되는 말 가운데 ‘대마불사(大馬不死)’가 있다. 하지만 바둑에서 큰 말은 죽지 않을 수 있지만 현실에서의 너무나 큰 말이나 비대한 말은 결코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그래서 대마(大馬)는 불마(不馬)다는 말까지 나왔다. 또한 옛 어른들께서 자주 하신 말 중에 ‘가방 크다고 공부 잘하는 것이 아니다’는 말도 떠오른다. 이런 말들에서 우리는 ‘크다’라는 형용사의 가치와 의미가 꼭 긍정적인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도량형 환산표를 보면 길이와 무게, 넓이와 부피엔 여러 단위가 있다. 10-1 인 데시(deci)와 10-2 센티(cent)에서 10-12인 테라(tera)까지 다양하다. 생물학에서의 세균에서 바리러스까지 여러 크기가 있다. 이런 크기를 대별하면 ‘크다’와 ‘작다’로 나뉜다. 문제는 모든 생명체나 사물은 그 나름의 성격이나 기능에 맞는 크기가 있는 것인데 우리는 큰 것은 풍요롭고 힘을 가진 좋은 것이고 작은 것은 부족하고 미약하여 좋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런 관점은 근자에 우리 교육계에 화두가 된 대학 통합에서도 그 크기를 적용하려는 경우가 많다. 특히 경쟁력을 대학의 규모, 즉 크기를 가지고 재단하거나 평가하려는 경향은 참으로 위험한 발상으로 심히 유감스러운데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양 대학이 통합되면 동일학과나 유사학과가 통합되면서 전체 모집 정원이 30% 정도 줄어들 것이며, 나아가 교직원 수도 점차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양 대학이 소재한 진주시 발전에 커다란 장애로 작용할 것이고 현 정부에서 ‘지방대의 발전과 육성을 지역균형발전과 연결시켜 국가균형발전에 기여하도록 정책적 역량을 집중하려 한다’는 정책과도 상반될 수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로 제시된 ‘지자체와의 긴밀한 협조와 역할 강화, 지원을 통해 국립대학 유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런 정부의 정책적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양 대학의 통합이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두 개 이상의 대학이 그 대학의 역사와 학풍, 철학과 지향 가치가 상이함에도 통합하여 실패한 많은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무릇 통합이나 결합은 자연현상의 순리대로 움직이는 것이 정상이다. 자연스런 화학적 결합은 큰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지만 억지적인 물리적 통합은 결국 원래의 형체도 찾지 못하고 분해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출산율 감소에 따른 많은 후유증을 앓을 것이다. 대학도 학령인구의 감소 등으로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작지만 강한 대학, 특성화되고 전문화된 대학은 살아남을 것이고, 크지만 시대의 조류에 편승하지 못하는 대학은 퇴출될 수도 있을 것이기에 우리는 지금 대학의 통합을 논의하기 전에 이 시대가 요구하는 대학상이 무엇인지, 나아가 전문화·특성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문병욱(진주고려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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