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독재권력에 저항한 창동백작 이선관
[경일포럼] 독재권력에 저항한 창동백작 이선관
  • 경남일보
  • 승인 2018.09.2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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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경남작가회의 회원)
지난해, 촛불이 한창 광장을 뜨겁게 달 굴 때 우리는 뜻밖에도 헌법에 대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너무나 쉽고 재미있어서 중요한 요점이 귀에 쏙쏙 들어 왔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김제동의 헌법강의’를 검색하면 볼 수 있다.

그런데 무려 40여 년 전에 시인 이선관은 더 쉽게 들려 주었다. 시 ‘헌법 제1조’는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그렇다니깐./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그래…./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그래./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허긴 그래.’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이선관의 헌법 이야기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든 미친 독재권력에 저항하는 시이다. ‘씨알의 소리’ 71년 10월호에 ‘애국자’, 72년 4월호에 ‘헌법 제1조’가 실렸는데 살벌한 유신독재 치하에서 ‘군인정치 10년을 돌아 본다’는 함석헌의 글과 함께 가장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지난해의 김제동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열띤 박수를 받았다. 그런데 이선관은 오히려 많은 고초를 겪었다. 조국의 근대화를 저해하는 인물이라고 하여 중앙정보부로부터 시집을 압수당하고 잡혀 가기도 하였다. ‘당국에 의해 수거되어 찢겨지고 폐기처분’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출판사 아미원의 강선백에 의하면 1981~1982년경 시집출판 계획을 미리 안 경찰에 의해 이선관과 함께 자신도 연행되었는데 결국 시집은 출판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때 이선관은 중앙정보부까지 연행되어 고생을 많이 했다. 1~2년 후인 1983년에야 네 번째 시집인 ‘보통시민’을 청운사(靑雲社)에서 출판할 수 있었다. 청운사는 당시 마산 부림시장 옆 인쇄골목에 있던 작은 출판사였다.

이선관은 그의 시 ‘하나뿐인 지구 그리고 조선반도’, ‘누군가는 또또 누군가는’, ‘나 이선관은 불사조다’에서 자신을 매사에 불평만 늘어놓는 불평분자, 위험한 주사파, 낙오된 글쟁이라고 매도하면서 그나마 장애인이라고 좀 봐주는 바람에 살아났다고 투덜대고 있다. ‘칠십 년대에 생긴 이야기 하나’에서는 ‘씨알의 소리’가 폐간되었을 때 ‘내가 살던 동회 동장님께서 몸소 집에 찾아와/ 어머니한테 상부에서 내려온 공문이라며/ 큰아드님의 신체검사를 한번 더 받아/ 그 소견서를 상부에 보고해야 된다고 했어’ 병원에서 진단받은 의사소견서를 갖다 주었다고 한다. 물론 상부의 속셈은 병역기피자로 몰아서 혼내주기 위해서 였다.

동료 시인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같이 활동했던 문인들이 모여서 당국에 항의를 하고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대책기구를 만들어야 할 텐데 그렇게 대응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물론 요즘 분위기와는 많이 달라서 대책기구를 만들 만한 분들은 모두 감시받고 있어서 몸조심해야 했고 나머지 문인들은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간염으로 고생할 때에는 그를 아는 사람들이 나서서 모금운동도 하고 간병을 자청하기도 했다.

마산문학관의 명칭문제로 지역이 떠들썩 했을 때, 이선관은 시 ‘발견 여덟’에서 미당 서정주가 쓴 수필제목이 하필 ‘이승만 박사의 곁’이었고 일본이 항복할 줄 몰라서 친일했다는 그의 답변이 아주 유명한 격언이 되어버렸다면서 ‘지식인으로서의 본질적 세계와 국민시인이 아닌 민족시인으로서의 시적 세계는 전혀 별개의 문제’인가를 제기하였다. 이 문제 제기는 ‘우리 고장의 작고한 시조시인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에 대한 찬반양론 때문이었다. 그 시조시인에 대해서는 시 ‘마산의 봄’에서 ‘마산의 봄은 아 마산의 봄은/ 시인 이은상씨의 그 파란 물결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명쾌하게 단언하고 있다. 13주기를 맞이하는 그를 추모하는 행사가 10월 5일 마산 창동에서 열린다.
 
전점석(경남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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