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민석(경남대 학보사 편집국장)
지난달 27일, 가족과 함께 입대를 앞둔 동생을 배웅하러 논산훈련소를 찾았다. 추석 연휴 기간 내내 함께 보냈기에 동생이 군대에 간다는 사실은 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다섯 살 차이 나는 동생을 평소에 어린애 취급만 했던 탓일까.
아직도 생각이 난다. 어렸을 적 동생 손을 잡고 유치원에 데려다주던, 같이 문방구 앞 오락기를 했던, 놀이터에서 함께 놀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사업 때문에 아버지와 어렸을 적부터 떨어져 살았던 나는 항상 동생을 챙겨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나를 보고 ‘동생 바보’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입대 전날, 동생의 머리를 밀기 위해 같이 미용실을 갔다. 동생은 자기 차례가 다가올수록 긴장이 됐는지 물 한 잔을 달라고 했다. 드디어 동생 차례가 되었다. “윙~ 윙~” 이발기 소리가 날수록 동생 머리는 짧아져 갔다. 동생을 놀리고 싶었지만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나라 남자라면 대부분 가는 군대지만 동생이라 그런지 마음이 울적해졌다.
머리를 자르고 가족 다 같이 저녁 식사를 위해 뷔페를 찾았다. 입대하기 전에 마음껏 먹고 가라는 부모님의 마음을 알아서였을까. 동생은 쉬지 않고 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갈비찜을 한 그릇 담아 가져다주었다. 군대를 다녀온 나는 훈련소에 있는 동안 먹고 싶은 음식들이 생각난다는 걸 알기에 더 챙겨주고 싶었다.
다음 날 아침, 마산에서 우리 가족은 맥모닝을 사 들고 논산훈련소로 출발했다. 점점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는 도중 진안 마이산 휴게소에 들려 전망대에서 마이산을 등지고 동생과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을 보며 동생을 기다리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논산에 도착해 동생에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이 뭐야?” 동생은 말했다. “자장면” 우리 가족은 중국집을 찾아다녔고 입대하기 전 동생과의 마지막 식사 자리를 가졌다.
훈련소에 들어가니 수많은 가족, 애인, 친구가 입대자와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리 군 복무기간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건 다들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논산에 도착한 이후 틈나면 동생을 안았다. 이때까지 못 해줬던 게 떠올랐다. 시간이 되자 동생은 연병장에 서 있었다. 그렇게 동생과의 마지막 인사를 하고 들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보기 위해 자리를 지켰다. 18개월은 긴 시간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잠시 이별을 했다.
아직도 생각이 난다. 어렸을 적 동생 손을 잡고 유치원에 데려다주던, 같이 문방구 앞 오락기를 했던, 놀이터에서 함께 놀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사업 때문에 아버지와 어렸을 적부터 떨어져 살았던 나는 항상 동생을 챙겨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나를 보고 ‘동생 바보’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입대 전날, 동생의 머리를 밀기 위해 같이 미용실을 갔다. 동생은 자기 차례가 다가올수록 긴장이 됐는지 물 한 잔을 달라고 했다. 드디어 동생 차례가 되었다. “윙~ 윙~” 이발기 소리가 날수록 동생 머리는 짧아져 갔다. 동생을 놀리고 싶었지만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나라 남자라면 대부분 가는 군대지만 동생이라 그런지 마음이 울적해졌다.
머리를 자르고 가족 다 같이 저녁 식사를 위해 뷔페를 찾았다. 입대하기 전에 마음껏 먹고 가라는 부모님의 마음을 알아서였을까. 동생은 쉬지 않고 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갈비찜을 한 그릇 담아 가져다주었다. 군대를 다녀온 나는 훈련소에 있는 동안 먹고 싶은 음식들이 생각난다는 걸 알기에 더 챙겨주고 싶었다.
다음 날 아침, 마산에서 우리 가족은 맥모닝을 사 들고 논산훈련소로 출발했다. 점점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는 도중 진안 마이산 휴게소에 들려 전망대에서 마이산을 등지고 동생과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을 보며 동생을 기다리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논산에 도착해 동생에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이 뭐야?” 동생은 말했다. “자장면” 우리 가족은 중국집을 찾아다녔고 입대하기 전 동생과의 마지막 식사 자리를 가졌다.
훈련소에 들어가니 수많은 가족, 애인, 친구가 입대자와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리 군 복무기간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건 다들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논산에 도착한 이후 틈나면 동생을 안았다. 이때까지 못 해줬던 게 떠올랐다. 시간이 되자 동생은 연병장에 서 있었다. 그렇게 동생과의 마지막 인사를 하고 들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보기 위해 자리를 지켰다. 18개월은 긴 시간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잠시 이별을 했다.
성민석(경남대 학보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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