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 혹은 고정관념
선입견 혹은 고정관념
  • 경남일보
  • 승인 2018.10.25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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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명상지도사)
강신

석 달에 한 번씩 모이는 중학교 동창 부부모임이라 지나온 세월속에 묻어둔 온갖 추억을 반찬으로 느긋하게 저녁식사를 마쳤는데도 헤어지기가 못내 아쉬운지 차를 한 잔 더 하자는데 만장일치를 보았다. 아마도 이해타산이 개입되지 않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의 수다로 삶의 무게를 잠시나마 잊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바닷가 빈터에 자리한 컨테이너로 만든 소박한 찻집의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파도를 따라 일렁이는 밤풍경에 취해 중년의 친구들은 차를 마시러 왔다는 본연의 목적을 잊어버렸다. 해변을 따라 걸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나무다리 위로 바람도 적당히 불어주고 촉수가 낮은 조명은 밤바다와 잘 어우러져 그 위에 선 우리들을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만들어 주었다. 앞서가는 여자들을 바라보면서 남자들은 걷는 것을 포기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난간에 비스듬히 기대고 서서 이야기에 취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수다가 여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껴본다. 그 수다의 중심에 서서 부드러운 혀로 현란한 말들을 만들어 내는 내 모습을 바라보던 한 친구가 “말을 참 잘하니 애초 직업을 그쪽으로 했으면 좋았겠다”는 칭찬 같은 말에 이어서 “말을 잘하는 사람들은 돈을 잘 쓰지 않는다”는 다소 엉뚱한 의견을 제시했다. 자기가 속한 사회단체 모임의 회장이 말은 잘 하는데 돈을 잘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경을 낀 사람은 깐깐해서 따지기를 잘한다’고 했던 학창시절 다니던 독서실 주인의 말이 불현 듯 떠올랐다. 독서실 사용료나 시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우연찮게도 모두 안경을 썼다는 것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과 돈을 잘 쓰는 것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가 있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마치 앞서가는 빨간색 승용차의 운전자가 여자일 것이란 생각, 전투기 조종사는 모두 남자일 것이란 생각, 간호사는 모두 여자일 것이라는 생각, AB형 혈액형을 가진 사람은 모두 머리가 좋을 것이라는 선입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언젠가 훈련병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산을 바라보면 어떤 생각이 나는지 물었더니 많은 수의 훈련병들이 유격장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산을 산으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을 덧씌워 만들어낸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전 열반하신 성철스님께서 즐겨 쓰시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는 말은 자신의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가미되지 않은 순수한 산과 물을 보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강신(명상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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