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고용세습으로 허탈한 취준생
[경일포럼]고용세습으로 허탈한 취준생
  • 경남일보
  • 승인 2018.10.2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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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호(경남과학기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촛불시위가 막바지를 달리던 작년 3월 도하(都下) 신문에 ‘취준생 울리는 고용세습’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현대판 음서제도’라 성토하였다. 이에 여야 국회의원들이 한 목소리로 고용세습을 원천 차단할 방안을 강구하는 ‘노조 채용비리 근절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등 비상대책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정권을 창출한 문재인 대통령은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전체직원 중 85.2%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전원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하며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였다. 이후 모든 공공기관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정책에 몰입한 결과 대통령의 약속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다. 그러나 서울교통공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공기업들이 시행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정이 ‘친인척 잔치’로 난장판이 되었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특히 연애, 결혼 등 모든 것을 포기해야하는 소위 ‘7포 세대’들인 청년들에게는 허탈을 넘어 절망에 가까울 것이다.

지금 취업준비생들은 최소 3∼5종의 스펙과 토익, 토플 점수는 기본으로 갖추고 전공과목에 열공을 해도 정규직 최종합격까지 평균 14곳이 넘는 회사에 응시하는 등 13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평균 384만원의 취업준비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현 정부는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일자리 차별을 없애고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위해’ 모든 일반 업무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조급하고 무분별하게 밀어붙이기식 정규직 전환정책이 고용세습이란 도덕적 해이를 낳고 있다. 임·직원의 동생, 처남, 누나, 배우자, 외삼촌, 이모부, 자매 등 천태만상의 고용세습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대통령이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언급한 지난 5월 이후 협력사 노조원들 사이에 “지금 협력사 어디든 계약직으로 입사해 버티면 공사 정규직으로 될 수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현 정부 들어 공공 부문에서 8만5000명이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이 과정에서 불법이 얼마나 많이 자행되어 왔는지가 국정감사를 통하여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다. 상황이 이지경인데 집권여당은 ‘거짓 선동’, ‘침소봉대’, ‘가짜 뉴스’라는 식으로 문제를 덮으려고 하고 있다.

일자리 차별을 없애고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에 따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일견 바람직하다 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의 과정에서 ‘공개경쟁 채용’ 원칙을 지키라는 것이다. 입사가 쉬운 비정규직으로 들어온 뒤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고용세습의 꼼수로 취준생들을 허탈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공정한 사회의 기본이다. 특히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표방하면서 최근 발표한 정부의 일자리 창출 대책의 상당부분은 단기간 일자리인 비정규직이라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 이것이 노동시장의 현실임을 정부는 인식해야 한다. 모든 노동시장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이다. 핵심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위한 노동개혁이다. 노동에 대한 수요는 업무의 특성과 경기변동에 따라 신축적으로 변동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도 포퓰리즘에 영합한 ‘비정규직 제로’정책을 과감히 포기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기본 방점을 찍는 노동개혁을 이룩해야 한다.

청년취업을 원천봉쇄하는 고용세습을 척결할 때 취준생들의 희망이 샘솟을 것이다. 지난 정권의 고용세습은 민간기업 만의 문제로 보았다. 그러나 지금의 심각성은 도를 넘어 공공기관까지 확대되고 있으니, 이제 국가기관의 고용세습도 남의 일이 아닐지 모르겠다는 의구심은 나만의 기우(杞憂)이길 바랄뿐이다.

 
이웅호(경남과학기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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