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한국차문화의 수도 진주, 이제 실천할 때
[아침논단]한국차문화의 수도 진주, 이제 실천할 때
  • 경남일보
  • 승인 2018.11.13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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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임식(LH 지역발전협력단장)
최임식

차문화는 찻잎의 효능에서 비롯된다. 차나무는 따듯한 기후에서 자라는 상록수로 가을에 하얀 꽃을 내밀고 향기를 품긴다. 그런데 이 ‘茶’라는 글자를 어찌 소리 내야 할까? ‘차’일까? 아니면 ‘다’일까? 표준국어대사전은 ‘차’를 한자 표기 없이 ‘차나무의 어린잎을 달이거나 우린 물’로 설명하고 있다. ‘다’를 검색하면 ‘궁중에서 숭늉을 이르던 말’이라는 설명 외에 특별한 뜻이 없다. 2015년 5월 국립국어원의 답변에는 ‘차’는 순우리말이고 ‘다’는 한자어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茶의 뜻은 ‘차’이고 발음은 ‘다’라고 해야 한다. 과연 그럴까?

茶의 원산지는 현재까지 중국의 운남과 사천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운남지방에서는 기원전부터 재배되어 왔다. 운남의 茶가 중국 북쪽으로 전파되어 복건성 민남어로는 [ti]로, 광동어로는 [cha]로 발음했다. 차의 영문 표기 ‘tea’ 혹은 ‘cha’가 그 혼용의 흔적이다. 이후 민남어 [ti]는 남방무역을 통해 영국 등 유럽으로 전해진다. 광동어 [cha]는 중국 북부를 거쳐 한국, 몽골, 일본 등으로 전파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러한 茶의 소리 분포는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채원화(2005)는 “훈민정음 반포이후 한자에 대한 표준음을 정한 동국정운(1448)에는 茶를 ㄸ 아래 ㅎ로 표기했는데 오늘날 ‘짜’ 발음”이라고 했다. 이후 월인석보, 두시언해, 훈몽자회 등에는 ‘차’로 표기했다. 정조 때 편찬된 한청문감(漢淸文鑑)에도 역시 ‘차’로 기재되어 있다. 일본어 ‘お茶’도 [오차]로 발음한다. 오늘날 중국도 茶를 [차]로 발음한다. 효당 최범술(1904~1979)은 <한국의 차도(1975)>에서 ‘차’ 발음을 주장했다. 1979년 1월 발족한 한국차인연합회도 ‘차’를 사용한다. ‘다’는 대체로 현대에 들어와서 두드러졌다. ‘차’든 ‘다’든 형식과 실체는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마시는 차를 [차]라고 당연히 말하니, 茶는 [차]라고 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우리나라 차의 전래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있지만, 공식 기록은 삼국사기 ‘흥덕왕조’에 나온다. 삼국사기에는 “828년 왕이 사신을 당에 보내 조공하고 당 문종은 인덕전에서 연회를 베풀어 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대렴(大廉)이 차의 종자를 가져왔다. 왕이 그것을 지리산에 심게 했다”고 했다. 하동 지리산 화개동을 우리나라 최초의 차시배지로 고증하고 있다. 지금도 지리산 권역의 하동, 산청 지역은 차 재배가 활발한데 봄에 찻잎을 따서 전통방식인 그늘에 비벼 말려 만든 ‘작설차(雀舌茶, 홍차류)’를 약이나 기호로 즐겨 마시고 있다.

신라 이후 고려시대에는 차 문화가 넓게 펴져 있었고 사찰에 차를 공급하는 차촌(茶村)도 형성되었다(신상화 외, 2012). 조선전기에도 차생활이 이어져 매월당 김시습은 80여수의 차시를 남겼다. 매월당은 직접 차광법(遮光法)으로 차를 재배하고 즐긴 진정한 차인이었다. 김종직은 백성들의 차 공납 폐해를 없애기 위해 함양에서 차원(茶園)을 조성했다. 임진왜란 이후 영·호남 사찰을 중심으로 명맥만 이어오던 차문화는 19세기에 들어 초의, 다산, 추사 등을 중심으로 부흥했으나 나라 잃은 시대에 다시 침체하였다.

학승이요, 차인이자 독립운동가인 효당이 주석한 사천 다솔사는 현대 강우(江右)차문화 중흥의 요람이다. 다솔사는 신라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527년)하기 전 503년에 창건되었다. 일제강점기 다솔사는 항일운동 근거지였다. 효당은 오랜 차생활을 그의 저서에 녹여내었는데 여기에서 초의선사를 대중에게 알리고, 차도를 선방에서 거리의 장삼이사에게 전파했다. 원효의 화쟁사상(和諍思想)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강우 차문화의 주요현장은 다솔사, 진주 비봉루와 의곡사, 남해 하천재, 하동 직하고택, 아인 박종한의 대아고 교장실 등이 있다. 전국의 차인들은 1981년 5월 25일 촉석루에 모여 한국 ‘차의 날’을 선포했다. 효당의 제자 정헌식은 1991년 강우차회를 만들고 사비를 들여 진주시내에 한국차문화사를 전시하는 백로원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 차의 남상(濫觴)과 중흥을 이끈 강우지역, 그 중심의 진주는 가히 한국차문화의 수도라 할 수 있다. 이제 그 실체를 갖추고 사회화를 실천할 때다.

최임식(LH 지역발전협력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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