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 진 ‘보이지 않는 빚’ 갚겠다”
“지역에 진 ‘보이지 않는 빚’ 갚겠다”
  • 김귀현
  • 승인 2018.11.19 17: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마을'로 시작해 33년 째 지역서점 자리 지켜와
[인터뷰] '서점의 날' 장관상 수상 여태훈 진주문고 대표

한 개인의 생계형 상행위였다고 했다. 지금은 스무명이 넘는 직원들과 함께 욕심을 갖기 시작했다. 꽃이 펴 향기를 풍기고 풍경을 만들듯, 지역서점이 지역에서 맡는 역할이 있다. 올해 ‘서점의 날’을 맞아 문체부장관상을 수상한 여태훈 씨의 철학이다. 그는 33년 째 지역서점을 운영해오고 있다.

그는 1986년 경상대 앞에서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다루던 ‘개척서림’으로 서점업을 시작했다. ‘책마을’(1988년)을 거쳐 1992년부터 ‘진주문고’가 지역민을 만나왔다. 그런 그가 책과 서점을 선택한 이유로는 개인적인 한계와 당시 사회상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여태훈 진주문고 대표는 “어렸을때 큰 사고 당해 장애가 생겼다. 당시만 해도 선택 가능한 직업의 폭이 협소했다”며 “또 외지에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당시 시대상황이 맞물려 인문과학 서점이 붐을 일으킨 덕분이기도 하다. 경상대 앞만 해도 그런 서점이 2개, 서울에서는 한 학교 앞마다 적게는 2개에서 많게는 5개씩 자리잡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서점들을 드나들던 여 대표가 갈 길, 갈피가 잡힌 건 그 즈음이다.

여태훈 대표는 “개척서림은 당시 시대상황 속 소위 ‘운동권’ 학생들의 놀이터였다. 책만 보는 곳이 아니라 만남의 장소가 되고도 하고, 일종의 해방구 역할을 했던 듯 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의 진주문고를 있게 한 모든 근원이 ‘책마을’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여 대표는 “문을 열었을 때 관심은 끌었지만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용자들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폭발적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대개 지갑사정이 넉넉하지 못했다. 책을 사본다는 것 자체가 부담됐던 시절이다. 일정 회비만 내면 휴일도 없이 밤 늦게까지 여는 서점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단 점이 주효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공간에 여러가지 시도를 했다. 현존하는 회원제도 당시 도입됐다. ‘작가와의 만남’이나 시 낭송회, 전시회 등도 열렸다.

여 대표는 “지금도 결국은 똑같은 일을 하고 있지 않나. 진주문고의 선험이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지금, 그는 이제 ‘서점을 어떻게 꾸려야 하는가’라는 생각에 빠졌다. 지역민에게 진주문고가 어떤 공간으로 자리잡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서점 대표 개인에게 몰리는 관심 역시 그 고민의 일부라고 여기고 있었다.

여태훈 대표는 “처음에는 개인의 능력으로 끌고 왔다고 생각했다. 지나고보니 나는 최소한의 역할만 했을 뿐이다”며 “진주문고는 오랜 시간을 품은 공간이다. 주변 공간과의 관계, 시민의 관심이 없었다면 존립하기 어려웠을 것이다”고 했다.

이에 대해 여 대표는 “지역민들에게 보이지 않는 빚을 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진주문고는 지역서점 중에서는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 규모다.

그는 “‘보이지 않는 빚’이 이제 보인다. 서점이 지역에서 해야 할 역할, 진주문고가 딛은 위치를 생각한다”며 “6개월에 걸친 공간 리뉴얼은 지역서점이 할 수 있는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찾고자 하는 첫 발걸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여 대표는 “인구절벽과 함께 인터넷 서점이 도약하고 대형 기업형 서점 독과점 체제는 견고해졌다. 활자보다 영상에 익숙한 세대가 주류에 편입되는 시대다”며 “지역서점은 그 파도를 맞아 매출 하강곡선이 가파르다. 왜소해지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내부 공간을 늘린데는 ‘책의 집’으로서 역할을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9일 수상한 문체부장관상 수상 이후 축하 인사를 받기 바쁘다. 소식은 수상 한 달 전쯤에 접했다. “서점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얼굴 좀 파십시오”라는 직원들 요청에 못 이겼다고 했다.

여 대표는 “진주문고를 지켜보신 분들에게 수상은 일종의 보상심리와 같이 작용한 모양이다. 한 번이라도 서점에 들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성장에 일익했다는, 작은 자부심을 가지신다”면서 “수상과 진주문고의 성장은 오랜 시간을 공유한 모두의 힘 덕분”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여태훈 대표는 지역서점이 짊어져야 할 책임에 소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이 공간을 지킬 수 있다면 어떠한 것도 감당하겠다”면서 “진주문고를 비롯해 꽃집 등 지역의 작은 상점을 찾아달란 말씀을 드리고 싶다. 진주문고가 그랬듯 지역민의 사랑과 관심이 작은 공간을 살리는 힘이 된다. 우리 지역을 살아갈 우리를 위해 약간의 불편을 감수해주시길 바란다”고 권했다.

김귀현기자 k2@gnnews.co.kr

 
여태훈 진주문고 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