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삼지 않으면 번뇌는 없다
문제 삼지 않으면 번뇌는 없다
  • 경남일보
  • 승인 2018.11.22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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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명상지도사)
강신

아침밥을 먹는데 돌을 씹었다. 기억장치에 저장돼 있던 동일한 정보들을 끄집어내어 화를 증폭시키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단잠을 포기하고 열심히 밥을 한 죄밖에 없는 아내를 향해 원망과 질타의 독설을 뱉어내기 직전에 좌우명으로 삼고자 한 말을 떠올렸다.

‘문제 삼지 않으면 번뇌는 없다’ 조용히 일어나 싱크대에 돌 섞인 밥알들을 뱉어내고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상쾌하고 고요한 아침의 분위기는 계속되고 가정의 평화는 유지됐다.

줄을 지어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는 출근 차량들 사이로 검은색 외제차 한대가 쉭하고 끼어들었다. ‘문제 삼지 않으면 번뇌는 없다’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나니 잠깐 일렁이던 파도가 가라앉고 마음 호수는 다시 고요해졌다.

점심을 먹기 위해 단골 식당에 갔다. 바쁜 걸음으로 콩콩거리며 다니는 주인아주머니가 착각을 했는지 우리 일행보다 늦게 오신 분들에게 먼저 식사를 제공했다. 같이간 동료가 궁시렁대는 소리에 나도 슬슬 부아가 올라왔지만 번뇌가 생기지 않도록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3분도 지나지 않아 우리에게도 식사가 제공되었고 가벼운 마음으로 오찬을 즐길 수 있었다.

사무실로 오는데 얼굴에 부딪치는 바람이 제법 차가워졌다. 겨울이 너무 빨리 오는 것은 아닌가 하고 살짝 짜증이 올라올 때 중얼거린다. ‘문제 삼지 않으면 번뇌는 없다’ 지난여름 무더위로 겨울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던 것을 떠올리며 차가운 바람을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자정이 가까워지는데 아들이 친구들과 술판이 벌어졌는지 영화를 보고 있는지 아무런 연락도 없다. 불안과 원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얼굴에 열기가 오름을 느끼면서 ‘문제 삼지 않으면 번뇌는 없다’라는 말을 떠올린다. 잠시 후 아들이 아이스크림이 담긴 봉지를 들고 웃으면서 현관문으로 들어온다. ‘왜 이렇게 늦었어?’라는 말 대신에 ‘출출했는데 고마워’라고 말하자 아들은 낮에 있었던 일들을 시시콜콜 늘어놓으며 입 꼬리가 올라간다.

자리에 누웠는데 늦게 찬 음식을 먹어서 그런지 잠이 잘 오지 않는다. 갑자기 불면증이 생긴 것일까? 언제쯤 잠들 수 있을까? 이러다가 내일 늦게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주문을 외운다. ‘문제 삼지 않으면 번뇌는 없다’ 잠이 던져준 문제에서 벗어나자 이내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내일은 더 많은 문제들이 내게 주어지겠지만 문제를 붙들고 시시비비와 좋고나쁨을 따지며 매달리지 말고 한 발자국 떨어져 관찰자의 입장에서 무심하게 흘려보내야겠다. “문제 삼지 않으면 번뇌는 없다.”

강신(명상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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