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21]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21]
  • 경남일보
  • 승인 2018.11.2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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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국립 해양박물관
배 위의 선원을 뜻하는 마도로스(Matroos), 선장을 일컫는 스키퍼(Skipper), 푸른바다를 가로지르는 요트(Yacht).

왠지 모르게 그리 낯설지 않은 이 단어들은 네덜란드어에서 비롯됐다. 이처럼 선박이나 항해 관련 용어들이 상당수 네덜란드어와 관련 있다는 사실은 과거 네덜란드가 엄청난 해상강국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네덜란드 역사와 문화에 관해 언급할 때, 바다를 빼놓을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17세기 네덜란드 전성기를 비롯해 오늘날 해상무역, 해양 관련 산업이 전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네덜란드를 에워싸고 있는 바다 덕분이었다. 탐험과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쳐있던 과거 네덜란드인들은 호기심과 희망을 가득 품은채 바다의 품으로 주저 없이 뛰어들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암스테르담이 유럽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 하고 있는 ‘항구도시’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그러나 암스테르담은 로테르담, 벨기에 앤트워프, 독일의 함부르크를 이어 유럽에서 네 번째로 큰 항구를 가진 도시로 코코아를 비롯한 감자, 석유 운송 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암스테르담이 오늘날 유럽을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단지 항구를 가지고 있다는 위치적 장점 때문만은 아닐 터. 500여 년의 네덜란드 해양역사를 담아내고 있는 국립 해양박물관이 그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주고 있다. 네덜란드의 역사를 이해하고 나면 이들의 문화와 삶이 더욱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네덜란드 국립 해양 박물관 전경.

암스테르담의 중심에 위치한 국립 해양박물관은 건물 외관부터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물위에 홀로 떠있는 멋들어진 건물과 그 옆에 나란히 정박해 있는 배는 멀리서도 이곳이 해양박물관임을 알아차리게 한다. 박물관으로 사용되어지고 있는 이 건물이 세워진 시기는 네덜란드 역사상 가장 전성기였던 17세기 중엽이었다. 화려한 네덜란드 역사의 중심지 암스테르담은 유럽에서 가장 바쁘고 활기찬 도시였으며, 이곳에서 구하지 못할 물건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물자들이 거래되었다. 암스테르담의 운하는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의 수요와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계속해서 확장 되어갔다. 운하 옆의 아름다운 집들 또한 암스테르담에서 부를 축척했던 상인들에 의해 계속 건축됐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운하위에서 크루즈를 타고 운하 옆 노천카페에 앉아 따뜻한 에스프레소 한잔을 즐길 수 있게 됐다.

한편 1656년 암스테르담 해군창고 용도로 건립 되어졌던 해양박물관 건물은 전쟁 함대를 위한 대포, 돛, 깃발 및 항해 장비 등을 보관하는 군사용 창고였다. 특히 내부 안뜰 아래쪽은 승선한 선원들에게 마실 물을 제공하기 위해 빗물을 저장하는 공간으로 사용했는데, 그 곳에서는 약 4만 리터의 물을 저장할 수 있었다. 이 건물은 1970년대 초까지 해군의 창고로 쓰이다가 1973년 국립 해양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후 계속해서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이 늘어나자 박물관은 국립 박물관의 명성에 걸 맞는 시설과 전시를 더욱 확장하기 위해 2007년부터 4년 여간 대대적인 확장 공사에 돌입했다. 내부 및 편의시설 확장에는 큰 변화를 주었지만, 건물의 기본 이미지였던 17세기 창고의 분위기를 보존하고자 외관 디자인의 변화에는 제한을 두었다. 이 공사에서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내부 천장인데, 항해 나침반에서 영감을 받은 박물관의 천장은 약 1200장의 유리로 이어져 있다. 화창한 날, 이 유리 천장을 통해 보는 파란 하늘은 지난날 네덜란드 함대가 누볐던 드넓은 바다를 보는 것 같다.
▲ 항해 나침반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 된 박물관 내부 천장. 약 1200장의 유리로 이어져 있다.

박물관 내부는 동, 서, 북관 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각각의 입구를 따로 마련하고 있어 관람이 편리하다. 먼저 동관에서는 네덜란드 해양 역사를 이해하기 용이한 갖가지 유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나침반이나 지도 같은 항해관련 도구를 포함해 과거부터 현재를 아우르는 배 모형이 전시되어 있어 선박제조 기술의 발전 과정을 알 수 있다. 특히 네덜란드의 찬란했던 항해 역사를 그림으로 만나 볼 수 있는 회화 전시관은 한국어로 제공되는 오디오가이드를 통해 더욱 깊은 이해가 가능하다.

서관에서는 네덜란드 항해사 바렌츠(Willem Barentsz)에 의해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고래’에 관련한 전시가 이어진다. 지금은 네덜란드법에서 고래의 포획이 명확히 금지 되어 있지만 한 때, 고래는 네덜란드인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중요한 자원이었다. 이 테마관은 무거운 박물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어린이, 학생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청각자료, 모형 등을 중점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다른 박물관들과 비교해 볼 때, 이 곳 해양박물관에서 유독 어린 아이들과 학생들의 무리를 많이 만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해양박물관 옆 전시되어 있는 ‘암스테르담호’.

한편 박물관건물 바로 옆에서 멋진 자태를 뽐내는 배는 북관으로 들어가 외부로 나가면 접근이 가능하다. 이 배의 정체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소속의 배 ‘암스테르담‘ 호를 똑같이 복제한 모형이다. 암스테르담호는 네덜란드 북부 텍셀에서 바타비아(지금의 인도네시아)로 출항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해협에서 폭풍으로 난파되었다.

16세기 말엽, 네덜란드인들은 포르투갈인들과 같이 유럽대륙의 동쪽으로 항해하기 시작했다. 항해를 떠났던 이들은 이국적인 향신료를 가득 실어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왔고, 네덜란드인들은 새로운 물건에 열광했다. 곧 수많은 원정대가 네덜란드를 떠나 새로운 모험을 시작했고 급기야 1602년 동인도회사(VOC)가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동인도회사는 왕실의 허가를 받은 칙허기업으로써 무역으로 이윤을 취하는 동시에 식민지도 개척해 나갔다. 아시아와 거래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다국적 기업이었던 동인도 회사는 막대한 이윤을 남기며 네덜란드의 황금기를 가져왔다.

당시 네덜란드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여정은 약 8개월이 소요 됐는데, 이 여정의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다름 아닌 폭풍우였다. 아무리 강한 인간의 모험심과 개척정신도 자연 앞에서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기 마련인지라, 암스테르담호와 같이 난파되거나 조난당하는 일이 빈번했다. 암스테르담호의 난파 이후 그 잔해가 영국 근처에서 발견 되었고, 연구자들에 의해 배의 구조 및 화물 내역, 나아가 선원들의 생활 등에 접근이 가능해 졌다. 1985년부터는 암스테르담호를 똑같이 복제하는 작업이 시작되었고, 이 일에는 약 400명의 자원 봉사자가 힘을 모았다. 그 결과, 사라진 암스테르담호는 실제 크기로 다시 복원되어 1991년부터 해양박물관 곁을 지키고 있다.

네덜란드에게 바다는 양식을 구할 수 있는 자원의 현장이었고, 바닷길을 통해 새로운 탐험을 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었으며 오늘날 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터를 제공하며 삶의 기반이 되어주고 있다.

지나간 역사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박물관이라는 존재가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적어도 한 나라의 역사에 관한 한,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도 없다는 말에 묵묵히 한 표를 던지고 있는 세상 모든 박물관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주소: Kattenburgerplein1, 1018KK, Amsterdam 네덜란드

운영시간: 매일 오전 9시~오후 5시

홈페이지: https://www.hetscheepvaartmuseum.com/

입장료: 성인 16유로, 17세 이하 8유로



 
가을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암스테르담 운하. 관광객들이 운하크루즈를 즐기며 계절을 만끽하고 있다.
회화 전시관. 과거 해상강국으로써의 네덜란드를 여과없이 드러내는 그림들이 한자리에 모여있다. 몇몇 작품은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을 곁들일 수 있어 더욱 깊은 이해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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