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철새의 계절에 생각함
12월, 철새의 계절에 생각함
  • 경남일보
  • 승인 2018.12.02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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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모(전 경남일보 국장)
정재모

달력은 이제 달랑 한 장이 남았다. 낯익은 숫자들을 무연히 쳐다본다. 2일. 이미 헐린 저 서른 한 개의 날들은 살처럼 흐를 거다. 펄럭. 환기창으로 바람이 들고 12월이 나부낀다. 일월(日月)이 종잇장처럼 해깝다.

펄럭이는 달력 너머로 짧은 해가 이운다. 줄지은 철새 네댓 마리 지는 해 비껴 높이 날고 있다. 기러기다. 어디로 나는가. 무엇하러 가는가.

겨울새는 가을에 우리 곁에 날아와 겨울을 난다. 봄이 오면 다시 북쪽으로 떠날 새다. 해거름 녘을 나는 저 새들은 먹이를 찾아 이동하고 있는 거다. 먹고 먹어도 차지 않는 식욕을 채우기 위해 날개가 아프도록 날고 있다.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염려되는 계절이다.

저 철새에게도 고향이 있는가. 있다면 이곳 남쪽인가, 날아갈 북쪽인가. 지금 제 고향에 돌아온 걸까, 내년 봄에 고향에 돌아갈 건가. 정체성이란 건 있는가. 철새들의 비상 바라보며 실없는 물음이 끝이 없다. 인간 철새에 생각이 뻗쳐서다.

얍삽한 정치판에도 철새의 계절이 돌아왔다. 거물 정치인 한 사람이 지난주 자유한국당에 들어갔다. 여당일 때 이 당을 떠났다가 대선 이후 제3의 정당에도 몸담았던 이다. 행보의 변은 분명하지만 의도는 애매하다. 입당인가 복당인가도 모호하다.

탄핵 정국에서 신당을 만들었던 유명 정치인도 곧 한국당에 복귀하리란 예측이 돌고 있다. 함께한 정권이 망하고 당이 파멸해 가는 와중에 당에서 등 떼밀렸던 사람이다. 다들 짧은 기간에 언필칭 대선후보 급으로 체급을 올린 이들이다.

처음 몸담았던 당이 야당에서 여당이 된 지금 뜻밖에 그 반대당으로 가겠다는 당찬 여성 의원도 있다. 그는 옮기려는 이유를 비교적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철이 철인지라 철새란 소리는 피하지 못할 거다. 어찌 이들이 전부이랴.

2020년 총선이 가까워 온다. 내년 큰 정당의 전당대회도 있다. 정치 철새들의 이동 군무는 더욱 현란해질 테다. 하늘의 철새 무리가 종종 AI 바이러스를 옮기듯 정치판 철새는 편두통 신드롬을 퍼뜨린다. 편두통은 갑자기 일어나는 발작성 두통이다. 처음 머리 한쪽이 지끈거리다가 두부 이곳저곳 옮아가며 괴롭히는 몹쓸 병이다.

철새 정치꾼들은 누군가에게 반드시 편두통을 일으킨다. 혹 구경꾼이 아플 수도 있고 놓친 당이나 받아들인 당의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다. 한국 정치판의 경험칙이다. 더구나 편두통(migraine)이란 단어가 본디 철새(migrant)에서 파생된 낱말임에랴. 암튼 철새 관찰 잘해야 할 철이 왔다.


정재모(전 경남일보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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