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남(시인, 논술강사)
지난 해 시집 ‘성규의 집’을 출간하였다. 대학 선배나 지인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내가 시를 쓰는 줄 몰랐던 것이다. 평소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데다, 만나도 실없는 소리나 했을 뿐, 시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문화예술지원금을 받았기 때문에 시집을 출간해야만 하는 해였다. 97년부터 본격 시작된 습작기 동안 써 둔 시는 수천 편으로 차고 넘쳤다. 나의 30대~40대는 시에 온 마음을 다하던 때 였다. 시라면 목숨도 돈도 아깝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시도 사람처럼 늙고 젊음이 있다고 생각되어, 최근 썼던 시 5편을 추려 이런 시를 쓰고 있으니 시집 출간을 원한다며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출판사에 투고하였다. 당연히 흔쾌히 승낙할 줄 알았는데, 아뿔사 거절하는 것이 아닌가. 5편 정도씩의 투고는 두어 차례 더 계속되었고, 그럴 때마다출판사에서는 고개를 저었다. ‘좀 더 부지런히, 써 봐라, 구성에 더 집중하라’는 요청과 함께. 먹고 사는 일에 몸과 마음을 다하고 있던 시기라 집중적으로 시에 몰두할 수 있는 상태가 못 되었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난감하였다.
컴퓨터를 구석구석 뒤지니 125편 짜리 원고 뭉치 하나가 발견되었다. 10년 전 퇴고를 마치고 출간 직전까지 갔다가 우여곡절 끝에 그만 둔 원고였다. 시적 자존심이랄까, 삶의 가치관이 순수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이 원고 파일을 던졌다. 마찬가지로 회신을 받지 못할 줄 알았는데, ‘시집 출간 축하’의 제목으로 이메일 한 통이 날아들었다. 나이를 훌쩍 넘겨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시기가 되어 대충 짝을 만나 결혼했더라면 그렇고 그런 삶을 피곤하게 살고 있었을텐테 끝까지 버티고 있다가 제 짝을 만난 것이다.
‘보내주신 옥고를 감사하게 읽어보았습니다.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이루어가는 과정이 감동을 줍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가족의 의미와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까지 인식할 수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원고 채택 답장이었다. 자세한 계약 내용이 적혀 있는 이메일을 한참동안 읽고 또 읽었다. 시를 쓰기 시작한 지 횟수로 20년이 되는 해였다.
여름 내내 퇴고를 하여, 가을이 되어 최종본을 넘겼고 출판사의 서평이 나왔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오랜 시간 두문불출, 자신만의 시세계를 닦아온 시인이 내놓는 첫 번째 시집은 우리 시의 왜소한 틀을 훌쩍 뛰어넘는다.’
정진남(시인,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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