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경제정책의 ‘해장술’ 효과
[경일시론]경제정책의 ‘해장술’ 효과
  • 경남일보
  • 승인 2018.12.0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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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객원논설위원·경상대학교 교수)
‘해장술’은 숙취를 해소하기 위해서 마시는 술이다. 한자로는 해정주라고 하는데 ‘숙취를 푸는 술’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잘못 읽혀지면서 이제는 ‘해장술’이 더 통용되는 말이 됐다. ‘해장술’의 뜻으로 미국에서는 ‘Hair of the dog’이라는 속어가 많이 쓰인다. 개에게 물렸을 때 그 개의 꼬리털을 태워 상처에 바르면 낫는다는 속설에 기인했다고 한다. 즉 ‘술로 술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봐도 ‘해장술’의 효과는 거의 모든 사람이 경험하고 또 인정하는 것 같다.

‘해장술’은 확실히 반짝 효과가 있는데 이것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숙취를 다스리는지는 아직 과학적으로는 규명되지 못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런 ‘해장술 습관’을 반복하면 숙취가 문제가 아니라 알코올 중독이나 간경화 등 더 고질적인 문제로 이어진다고 경고하고 있다. 숙취를 푸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푹 쉬면서 물을 자주 마시고 가벼운 운동이나 사우나로 땀을 내는 것이라고 한다. 이 경우 ‘해장술’을 마실 때에 비해 고통의 시간을 조금 더 감내해야 한다.

경제정책도 ‘해장술’의 반짝 효과처럼 단번에 정책과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참 좋겠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오히려 당장은 효과가 있어 보이기는 하나 부작용은 물론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더 많다. 다시 말해 어설픈 경제정책은 반짝 효과는 있으나 속으로 골병드는 ‘해장술 요법’과 같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실 경제정책의 ‘해장술’ 요법은 양극화, 자산 버블, 장기 불황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오늘날 세계 경제의 모습을 만든 주범이기도 하다.

1990년대 초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으로 세계경제에 편입되면서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으로 만들어진 중국제품이 세계시장에 풀려 세계물가를 안정시켰다. 이에 각국의 중앙은행은 저물가를 이유로 더 이상 금리나 통화량 통제를 줄이고 아예 적극적으로 돈을 ‘찍어 내는’ 행보로 돌아섰다. 경제규모에 비해 과잉으로 풀린 돈은 자산시장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간 곳이 주식시장이다. 때마침 ‘디지털 혁명’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있는 나스닥에 특히 많은 돈이 몰렸다. 이는 당연히 큰 버블을 일으키게 됐다. 이른바‘닷컴 버블’이나 ‘IT버블’로 불리는 현상이다. 그런데 이 버블이 커지면서 경기가 급랭하자 다시 저금리를 매개로 통화팽창 정책을 반복적으로 구사했다. 이렇게 풀린 통화는 새로운 버블을 만들어 경기를 쉽게 호황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러한 메커니즘이 반복되면서 집값 버블 형성 및 과열, 원유 등 원자재 버블 형성 및 과열이 반복되는 결과가 생겼다. 이 과정에서 경제 잠재력이 크게 악화됐고, 장기 불황의 씨앗이 잉태됐다.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먼도 이러한 메커니즘을 ‘해장술’에 비유한 바 있다.

현 정부가 들어선지 1년이 훨씬 지났다. 공무원 수를 늘리고, 최저임금을 크게 올리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복지예산을 대폭 늘리는 등 여러 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정책도 여러 차례 나왔다. 그러나 지난달의 청년 실업률이 지난 17년간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집값은 더욱 뛰었다. 최근 거래 절벽과 함께 집값이 조정 국면을 보이나 이 현상이 얼마나 갈지도 의문이다. 정부의 경제정책들이 ‘해장술’의 단기효과만 나타나고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김진석(객원논설위원·경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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