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프 > 피플
[행복한 도전]자활 꿈꾸는 '한국엄마' 유시아씨두 아들과 세상에 남겨진 팜티리의 홀로서기
김지원 기자  |  gnnews@gn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12.05  01:14:23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팜티리씨는 2007년 29살에 베트남에서 한국사람 유지기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베트남에선 늦은 결혼이었다. 팜티리씨에겐 19살 어린시절부터 사귄 베트남 연인이 있었다. 부모님의 허락을 얻고, 결혼을 몇 달 앞둔 상황에서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연인을 잃은 팜티리씨는 친척이 일하고 있던 러시아로 훌쩍 떠났다. 7년 반을 러시아에서 지낸 팜티리씨는 어머니의 간절한 부름에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연인을 잃은 슬픔에 결혼은 생각하지 않았던 팜티리씨에게 한국에서 일하던 사촌동생이 “좋은 사람”이라며 유 씨를 소개해줬다. 그렇게 팜티리씨는 다시 베트남을 떠나 낯선 나라에 도착했다.

다행히 친척 동생도 있고, 친구들도 더러 한국사람과 결혼해 와 있었다. 덕분에 용기를 내 한국행을 선택했다. 팜티리씨가 두번째로 고국을 떠나기로 마음 먹은 것은 남편 유 씨와의 행복한 가정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유 씨와의 행복은 너무 짧았다. 큰 아들 승현이가 유치원을 다니던 2013년 4월 남편 유 씨는 간암으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작은 아들 승태가 4살 이었다.

남편과 결혼해 한국에 왔을 때 시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고, 몸이 아픈 시아버지는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시누이 둘도 출가해 제사 때나 얼굴을 보던 사이였다. 남편이 갑자기 사망하자 팜티리씨는 한국에서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이 둘과 세상에 남겨진 팜티리씨는 막막한 심정에 성당을 찾았다고 했다. 한국어가 서툰 이주여성 한부모 가정에 사회의 시선이 처음 닿은 곳은 그곳이었다. 성당의 지원으로 장례를 치르고, 생활이 막막한 팜티리씨를 위한 도움의 손길이 여기저기서 닿았다. 시청 복지과에서는 여러 지원을 받으면서 팜티리씨는 이름을 바꿨다. 남편 성을 따서 유시아라고 직접 이름을 지었다. 기초생활수급이니, 아이들 학교·유치원 서류 등 적어내야 할 것은 많은데 베트남 이름으로는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가족사진
유시아씨 가족, 아들 승현(왼쪽), 승태.


소롭티미스트 진주클럽과의 인연도 성당에서 만남으로 시작됐다. 해마다 선정하는 ‘LYD(Live Your Dream)’프로젝트 대상자를 찾던 진주클럽은 시아씨가 찾아갔던 봉곡성당에서 사연을 듣고 2016년 후원자로 시아씨를 선정했다. 한국협회에서 ‘LYD’ 대상자로 선정된 이듬해 시아씨의 사연은 미주협회 지원대상자로도 추천됐다. 전세계에서 제출된 수많은 사연 중에 시아씨의 스토리는 두번째로 선정돼 후원금을 지원받기도 했다. 소롭티미스트 회원인 남양유업 자회사의 지원금으로 지난해에는 보일러도 교체했다.

시아씨는 한국에 온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말이 서툰 편이다. 다문화센터에서 한글을 배웠지만 그나마도 두 아이를 임신한 사이사이 9개월 남짓 출석했다. 시아씨는 수첩에 베트남 이름 ‘팜티리’를 직접 써줬다. 한글을 다 읽을 수는 있지만 모두 이해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남편의 울타리 안에 있던 시아씨는 이제 막 세상 밖으로 나온 터였다. 소롭티미스트 진주클럽에서는 시아씨의 자립할 수 있는 든든한 자격증을 따기를 바랐지만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시아씨는 시간을 온전히 쓸 수가 없었다. 일생에 한번 후원하는 ‘LYD’와 별개로 진주클럽에서는 매달 회원들끼리 푸드뱅크모임을 만들어 시아씨 가정을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시아씨 사연을 우연히 들은 상봉동 산호국수 사장님은 매달 푸드뱅크에 쌀을 보내오고 있다.

시아씨는 자활센터에서 재봉기술을 배워 지금은 수곡면에 위치한 자활센터 공방 ‘허브줌 사람들’에서 소품을 만들어 팔고 있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학교로, 유치원으로 뛰어가야 하는 시아씨에겐 시간을 조금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일자리가 아직 필요했다. 이제 승현이가 11살, 승태가 9살이다.


 
재봉틀들어온날
시아씨가 바라던 재봉틀이 들어왔다.


지난달 말 시아씨에게 바라던 선물이 도착했다. 재봉기술을 배운 시아씨는 재봉틀을 하나 장만 하려고 자활센터의 적은 월급에서 조금씩 떼어 40여만원의 돈을 모아왔다. 이런 시아씨의 사연에 진주클럽 회원 정경순씨가 나섰다. 10월에 결혼식을 올린 작은 며느리에게 시아씨의 사연을 들려주며 나눔에 동참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한 것이다. 경순씨의 며느리는 흔쾌히 재봉틀 비용을 냈다. 덕분에 자활센터에서 쓰던 것보다 성능좋은 재봉틀과, 중고지만 오버로크 미싱까지 한번에 들여놓게 된 것이다.

시아씨는 월급에서 매달 3만원 가량을 따로 뗀다. 남편이 죽고 장례를 치렀던 시아씨는 병원에 계신 시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를 대비해 장례 비용을 조금씩 모으고 있다고 했다.

“승현 아빠 없어서 너무 많이 걱정돼요. 그래서(돈을 모으고 있어요)….”

조상을 모시는 풍습은 베트남도 마찬가지다. 시아씨는 남편과 함께 하던 제사를 그대로 받아 혼자서 1년에 5번 제사와 차례 준비를 한다. 온 가족이 제사 준비를 하는 베트남과는 달리 혼자서 장을 보고, 음식을 다 준비하는 일이 힘들다고 했다.

그런 시아씨에게 가족들이 있는 베트남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베트남에서는 아이들 학교, 아무것도 안 도와줘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는 한국이 낫다고 생각했다는 이야기였다.



 
파우치와가방
시아씨가 자활센터에서 배운 재봉기술로 만든 가방과 파우치들.


아이 둘과 아직 서툰 세상을 살아내기 바쁜 시아씨에게 꿈이 무엇인지 물었다. 한동안 말이 없던 시아씨는 꿈 보다는 생활을 이야기 했다. “직장이 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 키우는데 돈이 많이 들어요. 중학교, 고등학교 가면 더 많이 들어요.” 시아씨는 보기보다 생각 많은 살림꾼이었다. 내년에 자활센터를 옮기면 월급이 조금 더 나아진다고 했다.

시아씨는 몸이 아플까봐 늘 걱정이다. 남편이 2년을 투병하다 사망했고, 자신이 아프면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인터뷰가 끝나가자 시아씨는 조심스럽게 말을 보탰다.

“나중에 아이들 다 자라고, 만약에 몸이 건강하면 남는 돈,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 도와줄거예요.”

시아씨는 어려울 때 도움 받은 기억을 그렇게 되갚아 나갈 ‘꿈’으로 키우고 있다.

김지원기자 goodnews.co.kr


 
단체사진
매월 셋째 주 금요일 푸드뱅크를 열어 시아씨 집을 방문하는 소롭티미스트 진주클럽 회원들.


소롭티미스트(SIA, Soroptimist Intermational of Americas)는

소롭티미스트는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해 활동하는 UN산하 국제여성기구다. 1921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전문직 여성들의 자원봉사단체인 소롭티미스트는 현재 전세계 129개국 8만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협회는 1966년 서울클럽으로 시작해 전국 38개클럽이 운영중이다. 소롭티미스트는 성인여성 가정의 자립을 지원하는 LYD 프로그램과 여성 청소년을 지속 후원하는 DB(Dream it, Be it)프로그램을 비롯해 성폭행 예방, 가정폭력 추방, 인신매매 종식 등 캠페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진주클럽은

진주클럽(회장 강인성)은 1994년 의사부인회 주축으로 처음 만들어졌다가 활동이 미미해 해체됐다. 2003년 다시 결성된 진주클럽은 현재 30여명의 회원이 활동중이다. 재결성 된 클럽은 초기회원들과 신규 회원들의 참여로 현재는 활발한 자원봉사 및 캠페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시아씨를 비롯한 LYD 프로그램와 청소년들의 장학지원 사업 ‘DB’로 여성의 자립을 돕고 있다. 특히 진주클럽은 매달 푸드뱅크 사업으로 생필품 등을 모아 지원이 필요한 후원대상에 전달하는 활동을 독자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김지원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