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83>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83>
  • 경남일보
  • 승인 2018.12.1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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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호 속의 섬, 까꼬실
진양호 속의 섬, 까꼬실 가는 길

필자가 살아오면서 가장 큰 상실감을 느꼈을 때가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다. 한 달에 서너 번씩 요양병원에 가서, 아들을 잘 알아보지도 못하시는 어머니를 뵙고 온 날이면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비록 편찮으신 어머니에 대한 아린 마음이 더 컸지만 ‘어머니’가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에겐 큰 위안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필자의 편이 되어 주신 든든한 후원자이면서 필자의 아픔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그때마다 위무해 주신 분이 어머니다. 내 마음 속에 가장 크고 깊게 차지하셨던 ‘어머니’라는 존재, 이 세상에 안 계실 때에사 비로소 그 상실감이 크게 느껴졌다. 어머니의 다른 이름이 바로 고향이다. 다시는 찾아갈 고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어머니의 부재와 유사한 상실감을 가지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 실향의 아픔이 서려있는 곳, 남강댐이 완공되면서 진양호 속의 섬 아닌 섬으로 불리는 까꼬실(귀곡동)을 국민체력센터(원장 이준기) ‘건강 하나 행복 둘’ 명품걷기클럽 회원들과 함께 탐방했다.

까꼬실을 탐방하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대평면 평사마을에서 들어가는 길과 까꼬실 실향민들을 위해 운행하는 배를 타고 진양호 선착장에서 들어가는 길이 있다. 백두대간 끝점인 꽃동실까지의 산행을 목적으로 가는 탐방객들은 대부분 평사마을 쪽을 이용한다. 우리 탐방팀은 가호서원, 충의사, 고인돌 등 역사유적지와 둘레길 탐방을 목적으로 진주시 관련부서에 까꼬실 탐방 신청과 허락을 받아내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밟은 뒤 배를 이용해서 탐방했다. 까꼬실은 상수원보호구역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해야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탐방객들은 쓰레기를 버리거나 오염의 원인이 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진양호 선착장과 건너편 까꼬실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까꼬실 주민의 실향에 대한 애절함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망향비가 서 있었다. 선착장에서 출발 10분만에 까꼬실 아래말선착장에 도착했다.



충절이 밴 가호서원과 충의사 옛터

탐방의 주된 목적은 가호서원과 충의사, 고인돌 등 까꼬실의 역사유적지 답사지만, 쉽게 올 수 없는 탐방길이다 보니 ‘아랫말선착장-꽃동실 가호전망대-당산-고인돌-분토산-톳제비고개-분딧골-가호서원·충의사·큰샘-가곡정-방한동천비·한골-새미골’까지 트레킹도 겸하기로 했다.

까꼬실 둘레길은 잘 정비되어 있었다. 까꼬실 실향민들이 연중 몇 번씩 찾아와서 직접 둘레길 정비 작업과 환경정화 활동을 한다고 한다. 이분들의 애향심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닦아놓은 숲길을 따라 백두대간의 끝점인 꽃동실에 도착하니 아름다운 진양호반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가호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남덕유산 찬샘에서 발원한 경호강과 지리산 천왕샘에서 발원한 덕천강이 이곳에서 합수하여 서부경남의 젖줄인 남강이 시작되는 곳이자 백두산에서 지리산 천왕봉에 이르는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의 마무리를 맺는 곳이 이 꽃동실이다. 꽃동실 가호전망대에서 바라본 진양호는 저물어가는 가을빛을 하나의 화폭에 담아놓은 수채화였다.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서 밤나무와 도토리나무 등 잡목들이 우거진 숲길을 걸어 까꼬실 마을의 수호신을 모셨던 당산 먼당을 지나자, 두꺼비 형상의 고인돌이 탐방객들을 맞아 주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제대로 지석묘의 풍모를 띠고 있었다. 야트막한 분토산과 톳재비고개를 지나 분딧골로 내려와 표지판의 안내에 따라 필자가 꼭 찾아보고 싶었던 가호서원과 충의사 옛터를 향해 갔다. 길 양쪽엔 수많은 대나무들이 도열해서 필자의 방문을 환영해 주고 있었다. 대나무와 벚나무가 번갈아서 반겨주는 포장된 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오른쪽에 펼쳐진 호수면 위 반짝이는 윤슬을 보는 즐거움도 만끽했다. 1㎞쯤 걸어가니 가호서원, 충의사 옛터라는 표지판과 샘터가 있었다. 마을을 떠난 주민들의 가슴 속에 서린 실향의 아픔이 샘터에 고인 물속에 얼비치고 있는 듯했다.

1970년 7월에 남강댐이 완공되면서 해주정씨의 부조묘 자리에 가호서원과 충의사를 정부에서 지어주었다. 임진왜란 때 함경북도 지역 의병대장으로 나라를 구하는데 큰 공을 세운 충의공 정문부 장군을 기리는 사당인 충의사와 가호서원을 1995년 남강댐 숭상공사를 하면서 이반성면 용암리로 옮겼다. 지금도 가호서원에서는 해마다 가을철을 맞아 달빛음악회를 열어서 충의공의 뜻을 기리고, 전통음식에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의 품격 높은 정서를 함양하는데 이바지하고 있다. 충의공 후손들의 갸륵한 마음이 새삼 우러러 보인다.



아름답고 귀한 사람이 살았던 까꼬실

‘까꼬실’, 정말 정겨운 이름이다. 마을 앞에 까꼬막(가파른 산길)이 있어서 까꼬실이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으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까꼬실의 한자 이름은 가귀곡동(佳貴谷洞)이다. 한자어인 ‘가귀곡’을 경상도 발음으로 좀더 강하게 소리내면 까뀌곡이 된다. 한자어 ‘곡(谷)’을 주로 ‘실’이라고 했으니까 까뀌실로 불렀을 것이다. 이 단어를 좀더 쉽게 발음한 것이 까꾸실, 다시 까꼬실이 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배롱나무란 말이 백일홍에서 나온 것처럼 까꼬실이란 이름도 가귀곡동이란 한자어에서 나왔다. 아름답고 귀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란 뜻을 가진 까꼬실, 마을 길가에 선 방한동천이란 비가 그 의미를 도와주고 있다.

귀곡초등학교 동창생들의 망향에 대한 간절함을 시화로 표현해 놓은 가호탐조대와 한골, 새미골까지 이어진 까꼬실 둘레길 탐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필자 일행도 까꼬실이 담고 있는 의미처럼 아름답고 귀한 사람이 되어 귀곡호에 오를 수 있었다. 너우니, 녹디섬, 쪽짓들, 통새미 등 아름다운 이름들이 진양호 물밑에서 고향을 지키고 있는 까꼬실, 실향민들의 애향심이 녹아있는 둘레길을 걸으면 아름다운 풍경 뒤에 물들어 있는 애틋한 마음이 탐방객들의 눈시울을 젖게 한다.



 
대나무숲으로 이루어진 까꼬실 둘레길.
두꺼비 모양의 고인돌.
가호서원과 충의사의 옛터.
까꼬실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선 망.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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