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 그래도 용서(容恕)하소서
[경일칼럼] 그래도 용서(容恕)하소서
  • 경남일보
  • 승인 2018.12.1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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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조용히 접을 준비를 하며 달력 한 장을 물끄러미 내려다 본다. 며칠 후면 세상 밖으로 사라질 운명이기에 더욱 게슴츠레하고 홀아비처럼 쓸쓸히 보인다.’ ‘반기룡’ 시인의 ‘12월’ 이라는 시의 첫 구절이다. 또 한해가 저물어 간다. 이맘때가 되면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있다. 바로 엊그제라는 말이다. 새해를 맞이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후딱 지나간다. 유독 12월이 되면 세월이 더 빨리 흘러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것이 12월의 감정이기도 하다. 시간은 냉정하고 무심하다. 모든 것을 변하게 한다. 살아있는 것은 죽음으로 이끌고 죽은 것은 기억에서 서서히 지워버린다. 1년 중 12월이 되면 다른 달과 달리 하고 싶은 말도 많다. 1년을 마무리 하는 달이기에 더욱 그렇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1년을 반성하는 글을 써보기도 한다. 우리의 삶은 매일 인간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희로애락(喜怒哀樂)도 인간관계를 통해서 가장 많이 느끼게 된다. 그러면 우리의 인간관계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뭘까? ‘증일아함경’ 에서는 은혜를 갚는 것이라고 했고, 어린왕자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고 하여 타인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 했고, 반면 불교에서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세 가지 다 어렵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이런 어려움 외에 필자에게 한 가지를 더 선택하라고 한다면 ‘용서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럼 용서(容恕)란 무엇인가? 동양에서는 얼굴 용(容), 같을 여(如), 마음 심(心), 즉 상대의 잘못을 수용하였기 때문에 얼굴을 마음으로 예전처럼 대한다는 것이다. 용서란 나를 힘들고 화나게 하거나 깊은 상처를 준 사람에게 갖게 되는 좋지 못한 부정적인 생각, 행동을 없애고 상대에 대한 좋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조건없이 상대를 이해해 주려는 마음가짐을 말한다. 예컨대 나를 화나고 힘들게 했던 상대방에게 더 이상 분노하고 원망하고 미워하거나 복수하려하지 않고 더 이해하고 공감하며 상대가 잘 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하버드 대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용서를 위해 감정이입과 미래를 그릴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과거 일에 얽매이기보다는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하는 마음이 용서를 가능케 한다는 의미이다. 의학적으로도 용서는 받을 때보다 남을 용서할 때 더 큰 평화가 찾아오는 역설적 속성이 있다. 원한을 품고 상처를 생각하면 혈압이 오르지만 가해자의 상황에 공감하고 용서를 상상할 때에는 그렇지 않다. 용서는 안정감을 주는 부교감신경계를 활성화 해 혈압을 낮추고 심장병 위험을 감소 시킨다. 용서는 새로운 나,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는 새로운 방법이다. 상처를 잊는 것이 아니라 상처의 기억이 남은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과거의 고통과 배신을 내려 놓는 것이다. 우리가 무겁게 짊어지고 다니는 증오와 고통의 봇짐을 벗어 놓는 일이다. 용서야말로 인간이 지닌 덕목 중 최고로 고귀한 것이다. 용서를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더 넒은 마음으로 사람을 볼 수 있게 되고 내가 하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아무리 이해하고 용서해 줄려고 해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배은망덕한 사람도 있다. 그래도 용서해야 한다. 용서는 용서를 해줄 수 없는 것을 용서해주는 것이 용서다. ‘용서를 받으려면 먼저 용서해라.’고 ‘세네카’가 말했듯이 자신과 원수같이 지낸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도 내가 먼저 용서하면서 올 12월을 마무리 해보자. 용서는 자신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고영실
전 진주외국어고교장·신지식인 도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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