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23]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23]
  • 경남일보
  • 승인 2018.12.20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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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네판테 미술관(Bonnefanten Museum)
▲ 네덜란드 최남단 도시 마스트리흐트. 이곳에서 암스테르담까지의 거리는 벨기에 브뤼셀까지 거리의 두 배가 넘는다.

네덜란드 최남단에 위치한 도시 마스트리흐트(Maastricht)는 암스테르담에서 꽤 오랫동안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 도시 중 하나다. 큰 도시에서 멀어졌으니 마스트리흐트를 조용하고 아담한 마을로 예상했다면 대답은 No! 마스트리흐트 대학이 있어서 젊은이들이 넘치는 도시인데다가 벨기에와 독일을 이웃나라로 두고 있으며, 프랑스와 룩셈부르크까지도 한시간 반 남짓 이면 갈 수 있는 그야말로 국제적인 도시다. 독특한 건축양식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갖가지 언어 때문에 여기가 네덜란드 라는 것도 잠시 잊게 만든다. 운하를 중심으로 형성된 네덜란드의 여러 도시들과는 달리 제법 넓직한 뫼즈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마스트리흐트는 1991년 유럽연합(EU)의 정식 출범을 위한 회의 개최지로써 마스트리흐트 조약이 체결된 도시이기도 하다.
 

▲ 보네판테 미술관 전경.


마스트리흐트 보네판테(Bonnefanten) 미술관은 이탈리아 출신의 건축가 알도 로시(Aldo Rossi)가 디자인한 로켓모양의 독특한 외관 때문에 도시를 상징하는 명소가 되었다.

1884년 지역역사 박물관에서부터 출발한 보네판테(Bonnefanten)미술관의 이름은 프랑스어 ‘bons enfants’(착한 혹은 좋은 아이)에서 파생되었다. 수녀원의 이름으로 인기 있었던 이 단어는 현재 미술관의 건물이 수녀원으로 쓰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미술관에서는 고 미술과 현대미술을 하나의 건물에서 만날 수 있는데, 특정 시기나 주제에 집중하여 전시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전형적인 미술관들과는 조금 차이를 보인다. 또한 네덜란드 자국 출신화가들의 그림이 주로 전시 되어 있는 미술관들과는 달리 보네판테 미술관은 과거 플랑드르 지역에 함께 속해 있던 벨기에 출신 화가들의 작품이 대다수 걸려 있다. 소장품은 종교적인 회화와 조각품이 주를 이루는데, 이것은 마스트리흐트를 포함한 네덜란드 남부지역이 종교개혁 당시 프로테스탄트(개신교)로 바뀌지 않고 여전히 가톨릭이 옹호되었음을 알 수 있다. 네덜란드는 종교개혁 당시 개신교의 등장으로 네덜란드 북부는 개신교를 남부지역과 벨기에 지역은 가톨릭을 지지하여 양분화 되었다. 결국에는 네덜란드 전체가 개신교를 주 종교로 삼게 되었지만,이 곳 마스트리흐트를 포함한 네덜란드 남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가톨릭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우리에게 보네판테 미술관에서 렘브란트나 베르메르의 작품을 기대하기보다 벨기에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화가들의 작품이나 카톨릭의 흔적을 찾으라는 힌트를 준다.

 

▲ 소 피터 브뤼헬(Pieter Brueghel the Younger,1564~1638)이 1605년에서 1610년 사이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베들레헴의 인구조사’(Census at Bethlehem).


미술관 2층 16-17세기 플랑드르 전시관에서는 벨기에 출신의 화가 피터 브뤼헬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것보다 먼저, 미술관에서 브뤼헬의 작품과 마주했다면 확인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피터 브뤼헬(Pieter Brueghel the Younger)은 그와 이름이 같은 아버지 피터 브뤼헬과 구분하기 위해 이름과 대(Elder),소(Younger)를 함께 표기하기 때문이다.

먼저 아버지 피터 브뤼헬의 이력부터 살펴보자. 그는 플랑드르 출신 화가로 일반 서민들의 일생생활 모습을 풍경화에 녹여 냈지만 그림 안에 종교나 역사에 관련한 사건들을 함께 묘사하여 작품에 무게를 싣곤 했다. 부자지간의 그림 스타일이 뚜렷하게 구분 된다면 그림만 보고도 누구의 작품인지 알아 챌 수 있을 텐데, 흥미롭게도 아들 피터 브뤼헬은 아버지의 그림을 모방하는 것을 주 된 활동으로 삼았다. 아버지의 그림을 모방하는 일은 단지 몇 작품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작업을 통해 아버지의 그림을 널리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보통의 예술가 집안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림이나 음악을 가르쳤던 것처럼 아들 피터가 아버지에게 그림 실력을 직접 전수 받은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 피터 브뤼헬은 피터가 5살 때 세상을 떠났고, 이후 어머니 메이켄 마저 세 아이를 남겨 두고 세상을 떠나면서 아이들은 외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그림에 유능했던 외할머니는 형제의 아버지를 대신해서 그림을 가르쳤다. 이후 벨기에 앤트워프에 화실을 마련한 피터 브뤼헬은 아버지 피터의 그림을 모방하며 비싸지 않은 값에 판매했다. 그는 아버지의 그림을 많게는 수 십장씩 똑 같이 따라 그려냈다.

전시실 한 켠에서 계절의 분위기를 한껏 내뿜고 있는 이 그림은 대 피터 브뤼헬의 작품을 아들 브뤼헬이 모방 한 것으로 서양미술에서는 처음으로 겨울 풍경을 담은 그림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림만 놓고 보면 자그마한 마을의 겨울 풍경을 묘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베들레헴의 인구조사’라는 제목은 우리로 하여금 그림을 조금 더 꼼꼼히 들여다보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그렇다면 그림을 찬찬히 읽어 보는 것은 어떨까?

대 피터 브뤼헬은 종종 성경 이야기를 작품의 소재로 다뤘다. 그러나 브뤼헬은 단순히 성경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세밀하고 상징적인 물체의 표현으로 그림에 교훈이나 읽을거리를 더했다.

먼저 그림 왼편에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건물을 살펴보자. 건물에 붙어 있는 외벽 장식은 합스부르크왕가를 상징 하는 표시다. 또한 사람들로부터 무언가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합스부르크왕가의 사람들을 나타낸다. 화가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플랑드르(지금의 네덜란드 및 벨기에)지역을 지배 했을 당시 서민들로부터 부당한 세금을 걷어가는 것에 대한 불만을 그림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시선을 그림 중심으로 옮겨보자.

이곳에는 당나귀를 타고 있는 임신한 여인과 한 남자가 보이는데, 톱을 맨 남자의 복장과 성스러움을 상징하는 푸른색 망토를 두른 것으로 보아 목수 요셉과 마리아라는 것을 읽어 낼 수 있다. 브뤼헬은 이 두 사람을 통해 루카 복음 2장 1-5절에 나오는 내용을 묘사하고 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세금을 걷기 위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호적을 등록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사람들은 이 명을 수행하기 위해 저마다 자신들의 고향으로 향했다. 요셉은 임신한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이라 불리는 다윗으로 향했는데, 브뤼헬은 베들레헴의 이러한 모습을 기존의 종교화처럼 인물 표현에 집중 한 것이 아니라 플랑드르 마을의 일상을 통해 하나의 풍경화처럼 담아냈다.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눈싸움을 하고 있고, 또 한쪽에서는 얼음위에서 썰매를 즐기고 있는 그저 평범해 보이는 겨울일상에 이렇게 많은 읽을거리가 숨어 있었다.

아들 피터 브뤼헬은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작품인 ‘베들레헴의 인구조사’ 역시 수 차례 따라 그렸다. 아버지 브뤼헬의 작품은 브뤼셀에 위치한 벨기에 왕립 미술관에 소장되어있다.

소 피터 브뤼헬은 독창적으로 그린 자신의 작품들도 유실 된 아버지의 그림을 따라 그려낸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녀야 했다. 그러나 아버지 그림을 집착이라도 하듯 평생 따라 그렸던 것은 너무 일찍 이별했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미술관에서 만난 그림이 먼발치에서가 아닌 그림 앞에 바짝 다가서서 읽어 봐야 할 것 같다면 이들 부자를 한번쯤 떠올려보자.



주소: Avenue Ceramique 250, 6221KX, Maastricht

운영시간: 화~일요일 오전 11시~오후 5시

홈페이지: https://www.bonnefanten.nl/

입장료: 12,5유로, 18세 이하 무료

 

모든 전시실로 통하는 미술관 내부의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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