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전 언론인,진주기억학교센터장)
또 새해가 열렸다. 모두들 새해 계획을 세운다. 더 나은 건강과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부(富)를 목표로 삼는다. 모든 게 지난해 보다 나아져야 한다.
조금만 더 더 더….
나의 새해 계획도 늘 그랬다.
내가 일하는 시설에 계신 70∼90대 어르신들과 처음 맞는 새해다. 삶의 종점을 향해가는 노인들의 새해 계획은 어떨까.
김 할머니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큰소리로 말한다. 점점 소리가 멀어진다.
“올해는 더 귀가 먹겠지. 그래도 서로 험담하는 소리, 나쁜 소식 듣지 않을 수 있어 얼마나 좋노”
김 할머니는 보청기를 착용하지 않으신다. 보청기를 주변의 잡소리까지 모두 들려서 오히려 귀가 아프다고 하신다. 필요 없는 소리는 듣지 않고 살고 싶은 게 올해 목표다.
무릎 관절이 나빠 보행 보조기의 의존 하시는 박할머니. 자식들은 관절수술을 권하지만 손 사레를 치신다.
“지금 수술해갖고 미국 갈 거도 아니고…. 혼자 화장실 갈 수 있고 주변 산책이라도 할 수 있으니 감사하지. 누운 채 대소변 받아내는 사람보다 낫지”
그렇다. 어르신들의 새해 꿈은 거창하지 않다. 주어진 삶의 조건을 조용히 받아들이면서 그 속에서 만족을 찾는다. 가족과 세상을 위해 힘든 삶을 살았지만 원망하지 않는다.
그동안 나는 해가 바뀌면 덧셈하는 꿈만 꿨다. 이제 뺄셈도 필요하고 부족함 속에서 감사하는 꿈을 꿀 때다.
올해는 소소한 일상에 감사하며 살고 싶다. 그래서 내가 정한 목표는 이렇다.
가족 및 주변사람들과 잘 지내자. 건강과 행복을 헤치는 나쁜 습관을 없애자. 비닐 남용을 막기 위해 장바구니를 쓰자. 내가 머문 곳을 깨끗이 청소하자. 밝은 표정으로 주변사람과 인사하자….
어르신들의 새해 꿈을 듣노라면 칠레의 시인 겸 가수 비올레타 파라(Violeta Parra)의 노래 ‘삶에 감사합니다(Gracias A la Vida)’가 떠올랐다.
‘내게 이토록 많을 걸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내게 흑과 백을 구분하고, 하늘에서 빛나는 별을 볼 수 있는 두 눈을 주셨습니다.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 내 사랑하는 이의 소리를 듣도록 두 귀를 주셨습니다.
그렇다. 눈과 귀의 고마움부터 깨닫는 새해가 되고 싶다.
김상진(전 언론인,진주기억학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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