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답게, 남성답게, 피해자답게?
여성답게, 남성답게, 피해자답게?
  • 경남일보
  • 승인 2019.01.10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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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진주여성회 대표)
2018년 한해를 뜨겁게 했던 미투운동의 정점을 찍었던 대권후보의 유명한 정치인의 미투사건,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2심 결심공판이 지난 9일 진행됐다. 검찰은 1심과 같은 형량을 구형했다. 그에 대한 선고는 2월 1일 있을 예정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 위력이 ‘존재’ 하지만, 그 위력이 ‘행사’되었다고는 보기 어렵고, 피해자가 피해 이후에도 일상을 유지한 것이 ‘피해자답지’ 못하므로 피해자 진술을 믿기 어려워 무죄를 선고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자신의 직업노동권에 대한 권리행사 권한을 가진 상사이자 유력한 대권후보라는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피해자에게 저지른 성폭행을 두고 위력이 없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상황에서도 NO라고 말하지 않으면 다 YES이며, 적극적인 거절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다 동의한 것인가? 피해자의 상황과 맥락이 고려되지 않은 판결로 미투운동의 용기들을 밟고 말았다.

또한 피해자답지 못했다는 내용은 더 납득하기 힘들다. 성폭력 피해자는 어떻게 해야 피해자다울까?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있거나 정신적으로 피폐하여 일상생활이 힘들어야 한다. 업무는 팽개치고 결근을 밥 먹듯 해야 하는 건가? 성폭력 피해자라는 현실직시가 힘들어 더 업무를 열심히 하며 잊고자 했다면 피해자답지 못한 건가? 피해자행동이라는 정답 매뉴얼이 있는가? 피해자다운 행동은 있을 수 없다. 다만 피해자만 있을 뿐이다.

피해자답게 뿐만 아니라 ‘~답게’로 인해 합리화된 우리 사회의 많은 잘못된 고정관념이 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식민지 땅에서 식민지 젊은 여성을 강간하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지”라고 서슴지 않고 말한 반성 없는 일본군인 2005년 MBC세계를 뒤흔든 사건-난징대학살편 인터뷰 내용), 강간이라는 무서운 범죄지만 전쟁의 상황에서 합리화 되어버린 남자다운 행동은 누가 준 권력일까?

일상에서도 이 ‘~답게’의 함정은 계속되고 있다. 남자는 씩씩해야 한다. 남자는 평생 세 번 이상 울지 않는다며 슬픈 감정표현마저도 자제해야한다. 결혼할 때 남자는 집을 사야하며 가정경제를 위해 돈을 벌어 와야 한다며 경제적 압박을 받는다. 여자는 조신해야 하며 큰소리를 내면 안 된다며 행동의 제약을 받는다. 꾸미지 않으면 여자가 아니다. 여자답게 치마를 입고 다녀서 범죄에 노출된다고 말한다. 심지어 “아침에 첫 손님이 여자라서 재수가 없다”라는 성역할 고정관념이 존재 한다. 게다가 성역할 고정관념에 이 ‘~답게’를 고착시키면서 성소수자는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 이 남자답게 여자답게라는 말이 너무도 익숙하게 사용하지만 불합리하고 불편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답게’ 라는 말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답게’ 라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비정상의 범주에 속할 수밖에 없다. ‘~답지 못해서’ 비난의 대상이 된다. 개인의 본성은 무시된 채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은근한 압박이 작동된다.그러니 피해자답게라는 말로 피해자를 두 번 상처 주는 일을 그만두자.

사장답게, 직원답게, 학생답게, 선생답게, 어른답게, 아이답게 라는 말에는 그 중간이 없다. 네모난 상자에 넣어 규격화 시키고 편을 가르고 기준을 들이대지 말자. 열린 눈, 열린 귀, 열린 마음으로 좀 더 유연하게 상대를 받아들인다면 평등하고 평화로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2019년 새해에는 개인의 고유성은 인정되고 다양성은 존중되는 아름다운 사회로 우리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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