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받고 싶은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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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9.01.17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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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진해근대문화유산보전회 고문)
전점석
전점석

매천 황현은 한말 4대가로 불리우는 뛰어난 작가이다. 자신이 살던 시대를 증언한 ‘매천야록(梅泉野錄)’은 당시의 역사를 자기 일로 생각하는 매천의 절개를 느낄 수 있는 명작이다. 그는 나라가 경술국치를 당하자 가을 등불 아래 책을 덮었다.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절명시(絶命詩)를 남겼다. 매천과 비슷한 연배로 상해 임시정부의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이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고향으로 가서 종가집인 임청각(臨淸閣)을 팔고 고생길인 만주로 떠나면서 공맹(孔孟)은 나라를 찾은 연후에 읽어도 된다고 선언하였다.

도저히 책을 덮을 엄두가 나지 않는 나는 다행히 최근에 다산과 만해로부터 충고와 조언을 듣게 되었다. 다산 정약용은 귀양살이할 때,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라를 근심하고, 시대를 아파하며 세속에 분개하는’ 시가 참된 시이며 ‘백성에게 혜택을 주려는 마음가짐을 지니지 못한 사람은 시를 지을 수가 없다’고 가르쳤다. 글을 쓰는 사람은, 복잡한 세상과 담을 쌓고 글만 잘 쓰면 되는 줄 알았는데 다산은 나라를 근심하고,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할 줄 알아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한다. 한국 시문학의 금자탑이라고 불리는 만해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은 그가 3·1운동으로 3년여의 옥고를 치르고 난 뒤인 1925년에 썼다. 그 당시의 많은 청소년들이 손에 들고 다녔던 애독서였다. 책의 말미에는 ‘독자에게’ 쓴 글이 있다. ‘독자여 나는 시인으로 여러분의 앞에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여러분이 나의 시를 읽을 때에 나를 슬퍼하고 스스로 슬퍼할 줄을 압니다. 나는 나의 시를 독자의 자손에게까지 읽히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 때에는 나의 시를 읽는 것이 늦은 봄의 꽃수풀에 앉아서 마른 국화를 비벼서 코에 대는 것과 같을런지 모르겠습니다’ 만해는 자신의 글이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읽혀지는 글이 아니라 말라 비틀어져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글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에게 글은 민족독립을 위한 도구였다. 비록 나중에는 색이 바래져서 읽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지라도 지금 여기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만해의 예술관은 편협하지 않으면서 균형 감각이 있었다. ‘예술이라 하는 것은 반드시 어떤 시대와 세상만을 그려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세상을 떠나서 천상(天上)을 그릴 수도 있는 것이요, 지하를 그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왕이면 이 시대의 사람이요, 이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가 시킨다든지 어떠한 필요에서보다도 자연히 이 시대와 세상을 먼저 그려내는 것이 순서로 보아서도 타당한 일이라고 보겠다’고 하였다.

다산 정약용과 만해 한용운의 글쓰는 자세를 본받고자 노력했던 마산 시인 이선관은 1973년, 두 번째 시집 ‘인간선언’에서 ‘이 시대는 예술적으로 승화된 작품이 요구되는 시대라기보담 더 근본적인 무엇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라고 주장하였다. 심지어 ‘나는 시인이 아니다. 다만 비인간화를 촉진시키는 일절의 것에 대한 단호히 반격하려는 작은 몸부림’을 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선관은 그의 시 ‘이제는 나도 서정시를 쓰고 싶다’에서 자기도 왜 서정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없겠냐고 말한다. 언제 그 날이 올지는 모르지만 좋은 세월이 오면 자기도 누구든지 읽어서 흥이 나고 즐거워 할 시를 쓸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면 이선관 시인이 돌아가신지 벌써 13년이 지났다. 지금은 어떤 시절인가?

 

전점석(진해근대문화유산보전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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