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봉명다원 원장)
어릴 적 내가 살던 작은 집을 가끔 떠올려본다. 작은집에다 좁은방이었지만 장작불을 땐 구들방이 따뜻해 우리 가족들은 옹기종기 모여앉아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달콤한 얘기꽃을 피웠다. 궁핍해도 모두 함께 한 덕분에 서로 체온을 느낄수 있어 가족간 우애가 넘쳤다.
그러나 한편으론 너무 좁은 탓에 포개지고 부딪치면서 가끔씩 말다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는 훗날 큰마당이 있는 넓은 집을 가져야겠다는 소망을 갖기도 했다.
집은 ‘사람이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을 말한다. 삶에서 가장 신기한 일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이렇게 작은 집에서나마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울 때나 추울 때나 자신을 그 환경에 맞추면서 살아가게 된다. 강물처럼 흐르는 내 삶의 에너지를 태동케 하는 산실이 바로 집이다.
지금 나는 어릴적 꿈꿨던 큰집을 소유하지 않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이 고래등처럼 크거나 화려한 기와집이 아니다. 다만 손바닥만 한 땅에 각종 채소와 구황식물을 심어 가꾸고 있다. 이 작은 땅에는 누런 꿀참외와 흑빛 포도송이, 붉은 방울토마토, 자색의 가지 초록의 상추가 사계절 빛깔을 달리하며 자라고 있다. 여기에다 가끔 한겨울에는 장독대에 눈이 쌓여 하얀 설국이 된다. 그 옆에는 상록 침엽수 소나무가 추위를 견디며 서 있다.
나는 이 작은 집에서 사시사철 변해가는 이런 풍경을 보면서 감상에 젖어본다. 때로는 유명한 음악가도 되어보고 화가도 되어보고 시인이 되기도 한다. 이제 이런 생활에 익숙해진 나는 어릴 적 꿈꿨던 도회지의 화려한 빌딩과 크고 넓은 저택의 소망에서 약간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한여름 ‘후두둑’ 빗방울이 내리치는 폭풍우와, 가을날 조용히 찻물을 따르는 소리, 이 모든 것이 내 옆에 소중하게 다가와 있다. 차 한잔을 나누며 주고 받는 담소는 문명시대에 찌든 정신과 육체를 치유해준다. 이 공간이 초암다실 쪽문집처럼 모두가 평등한 삶을 누릴수 있는 터전이 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인생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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