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단축의 역사와 명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와 명암
  • 경남일보
  • 승인 2019.01.22 17: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대학교 교수
헤밍웨이가 쓴 ‘킬리만자로의 눈’의 한 장면이다. 파리 뒷골목인 콩트레스카르프 광장, 사람들은 지독한 가난을 잊기 위해서 언제나 싸구려 와인에 취해 있었다. 해리의 가정부 마리는 하루 8시간만 일하도록 한 노동계 때문에 주정뱅이 천국이 됐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6시까지 일을 하게 되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간단히 한잔 정도 할테니 돈도 과히 낭비되지 않을 거예요. 그렇지만 5시에 일이 끝난다면 매일 밤 취하게 되니 돈이 남아날 리 없어요. 노동시간 단축으로 골탕먹는 사람은 노동자의 부인들뿐이라니까요”가정부 마리의 불만은 헤밍웨이가 살던 당시 부녀자들의 실제 불만이었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1936년 집필됐다. 프랑스에서 하루 8시간 노동제가 시행된 해이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노동시간과 노동환경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하루 12시간~16시간씩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노동자가 많았다. 사망과 부상 등 산업재해가 잇따르자 1802년 영국에서 어린이 노동은 아침 6시 이후에 시작해 저녁 9시 이전에 끝내야 하며, 하루 1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는 법이 처음 만들어졌다. 협동조합운동의 창시자인 로버트 오웬은 1810년 하루 10시간 노동을 요구했다. 당시에는 10시간 노동도 파격적이었다. 7년 후인 1817년 오웬은 주 8시간 노동을 요구한다. ‘8시간 노동-8시간 재충전-8시간 휴식’의 논리였다.

1833년 영국은 공장법을 통해 하루 노동시간을 12시간으로 정했다. 1847년에는 어린이와 여성의 노동시간을 하루 10시간으로 제한했다. 오웬이 하루 10시간 노동제를 주창한지 37년만이었다. 1848년 2월 파리에서 노동자들의 폭력혁명이 일어나자 프랑스 정부도 하루 12시간 노동제를 도입했다. 1865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주도했던 국제노동자협회는 ‘8시간 노동제’를 정식 요구했다. 하루 8시간 노동에 대한 요구가 봇물처럼 터졌다. 1886년 5월 1일 미국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 시행을 요구하며 시카고 전역에서 총파업을 벌렸다. 국제노동자협회는 이날을 기념해 메이데이를 국제노동자투쟁의 날로 지정했다. 이날이 노동절이다.

러시아는 1917년 10월 혁명을 계기로 8시간 노동제를 최초로 선포했다. 2년 후인 1919년 국제노동기구(ILO)는 첫 세계총회에서 일 8시간, 주 48시간 노동제를 협약으로 채택했다. 프랑스는 1936년, 독일과 미국은 1938년 8시간 노동제를 받아들였다.

우리나라는 1953년 근로기준법으로 노동시간을 하루 8시간, 주 48시간으로 정했다. 1989년 법정근로시간은 주 44시간으로 단축됐고, 2003년부터는 주 40시간으로 줄어들었다. 실제로는 법정근로시간(40시간)에 추가근로(12시간)가 허용되고, 주말근무(하루 8시간)까지 포함하면 68시간까지 일할 수 있었다. 작년 7월부터 시행된 주 52시간제는 주말근무 8시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골자다. 따라서 어떠한 경우에도 일주일간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할 수 없도록 했다.

노동시간 단축문제는 경영계와 노동계가 끊임없이 충돌해 왔다. 노동생산성이 같이 높아지지 않으면 비용증가에 따라 경영부담이 급격히 늘어난다. 물론 노동시간 단축이 기업에 반드시 나쁘다고 보기 어렵다. 1914년 헨리 포드는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를 전격 도입했고, 이는 생산성 혁신으로 이어졌다. 노동시간 단축은 장기적으로 산업 생태계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재편시키는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또 노동자의 휴식시간 증가로 레저, 외식, 숙박 등 서비스산업은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