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449)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449)
  • 경남일보
  • 승인 2019.01.24 18: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주의 문인들, 그중 이형기(1)
국회보 2019년 1월호 ‘나의 애송시’난에 진주지역 김재경 국회의원의 글이 실려 있다. 글 제목은 ‘시를 품은 정치인이 되고자 했던 나’이다. 여기서 김 의원은 대학 3학년 고시 공부하기 전까지 대학내 문학써클에 들어가 시를 습작했다고 전제하고 그 무렵 캠퍼스에서 허수경 시인과 더불어 많은 교감을 이루었다고 하고는 저간 허수경 시인이 독일에서 돌아간 비보를 듣고 가슴 아픈 사연을 기술하고 있다.

그런 뒤에 김의원의 애송시는 이형기(1933- 2005)의 대표작 ‘낙화’라고 하면서 그 시를 소개했다. 정치와 시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시 같은 정치를 한다면 시와 정치가 한 자리에 놓이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김의원의 이번 기고는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이 아닐까 한다. 진주에서 이형기 시인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의 물꼬를 트기 시작한 것은 물론 고등학교 교과서에 ‘낙화’가 실림으로써일 테지만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진주 제일로터리클럽에서 진주시내 녹지공원 분수대 근처에 ‘낙화’ 시비를 세운 때부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헤어지자./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낙화’ 전문)

이 시는 제1시집 ‘적막강산’의 제3부에 실려 있다. 제1시집은 알려진 대로 순수 서정의 세계를 보이는 시편들로 채워져 있다. 이형기 시인의 이 시를 보면 결별에 대한 서정인데 시인의 20대 초반에 쓴 시로서는 비교적 이별의 실체가 있는 것처럼 읽힌다. 그런데 이형기 시인이 진주에 왔을 때 필자를 보고 “사람들은 이형기가 무슨 거창한 이별이라도 한 것처럼 아는데, 그때 시퍼런 애숭이인 나이에 무슨 이별을 체험했겠나요.”라 했다. 그냥 젊은 나이에 가상적 상상적 이별을 형상화 했던 것이었다. 그만큼 이형기의 감수성과 상상력이 조숙했다 할 수 있다.

이형기는 1949년 제1회 개천예술제 백일장 장원을 하고 바로 그해 ‘문예’라는 우리나라 대표 문예지에 시가 추천이 되어 우리나라 최연소 등단자가 되어 일약 유명해졌다. 그러니까 이형기는 진주농림학교 은사인 이병주소설가보다 먼저 문인이 된 것이다. 이형기가 신인상 수상자가 되어 서울 문예사에 갔을 때 심사위원이었던 서정주 시인은 17세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난감했지만 조숙한 시인으로 대접해 주었다는 후일담이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 훈훈하게 한다.

이형기 시인에 대해 문학에 대한 기초가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설명하면 1960년대의 경우 김수영, 김춘수 같은 당시의 대표적 시인과의 관계로서 이야기할 수 있다. 김수영이 현실주의자이고 그 상대쪽에 예술주의자 김춘수를 세우면 그 사이에 이형기가 서 있을 수 있고, 모더니즘(김수영)과 무의미시(김춘수)라는 반열에서 보면 허무주의적 실존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이형기는 같은 저울대 위에 놓일 수 있다. 이형기는 1950년대 우리나라 전후문학에 있어서 소설에서 전개된 바 있는 실존적 니힐리즘과 연대하는 시를 썼다고 볼 수 있다. 일테면 50년대 대표적 소설가인 손창섭이나 장용학의 소설이 갖는 세계와 연대한 시상 위에 놓이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형기 시인이 갖는 진주에서의 문화사적 예술사적 위상은 어떤 것일까? 진주가 자랑하는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예술제는 통시적으로도 하나의 맥락을 이루고 역사를 기록하고 있고 당대적으로도 효시라는 전범의 틀을 내외에 과시하며 있는데 그 결실로 말하면 경제적 효과나 문화사적 영향력에서 소정의 몫을 계량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개천예술제가 배출한 예술 신인들이 해당분야에서 전국적 명성을 얻은 가운데 이형기 시인의 경우 개천예술제의 꽃이라 불리는 백일장 제1회 장원자로서 그 위상은 비교할 수 없는 자리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이형기는 개천예술제의 아이콘이요 진주예술의 아이콘인 셈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