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창 이선유, 지리산 정원을 적시다
명창 이선유, 지리산 정원을 적시다
  • 강진성
  • 승인 2019.01.2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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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임식(LH 지역상생협력단장)
최임식
최임식

동리 신재효(1812~1884)는 조선후기 주로 광대들의 육성으로 장터에서 공연되던 판소리 12마당 중 6마당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전북 고창 출신의 동리는 판소리를 예술로 승화시키고 이론을 정립한 인물이다. 동리 이후 판소리는 급격하게 발전하게 되지만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남도 판소리는 섬진강을 중심으로 동·서편제로 구분되어 발전했다. 사실 판소리 양식을 의미하는 ‘제(制)’라는 용어는 1940년 정노식의 ‘선창극사’에 처음 등장한다. 정노식은 각 명창의 이름 앞에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 등을 표기했다. 대체로 섬진강 동쪽의 구례, 남원, 순창, 하동에서 동편제가, 강 서쪽의 담양, 보성, 화순, 광주, 나주에서 서편제가 각각 전승되어 왔다. 서편제는 순창에서 출생하여 보성에서 말년을 보낸 박유전(1835~1906)을 시조로 본다. 동편제는 남원 운봉 출신 ‘가왕(歌王)’송흥록(1800~?)의 법제를 따르는 양식이다. 대체로 서편제는 계면조의 여성적, 기교적인 면을 띤 반면 동편제는 웅장하고 씩씩한 남성적인 소리를 표현한다. 19세기에는 감정이 절제된 동편제가 양반들의 취향에 맞아 서편제에 우위를 점하였으나 일제 강점기 들어 민족의 울분을 위로해 준 것은 애조 띤 서편제 선율이었다.

동편제는 중심인 송흥록을 비롯한 김세종,정춘풍 등 3계열로 구분, 발전하였다. 송흥록이 진주 촉석루에서 춘향가 중 옥중 귀곡성(鬼哭聲) 대목을 부를 때 바람이 불면서 춧불이 갑자기 꺼지고 공중에서 귀신소리가 났다는 일화가 있다. 송흥록과 김세종 계열을 종합한 명창은 이선유(1873~1949)다. 하동 악양에서 태어난 이선유는 15세때 동편제 명창 송우룡을 구례로 찾아가 3년간 배우고 폭포와 사찰에서 10여년간 독공(獨工)을 하였다. 이후 순창의 김세종을 찾아가 양반취향의 고상한 동편제 소리를 배웠다. 김세종은 일찍이 신재효를 사사하여 판소리 이론에 밝았고 흥선대원군의 총애를 받은 조선 8대명창 중 일인이었다. 김세종에게 배운 이후 이선유는 드디어 득음(得音)의 경지에 이르렀다.

1910년 한일병탄 전까지 송만갑 등과 함께 지방공연을 다닌 이선유는 나라가 망하자 고향 악양으로 돌아온다. 일제시대 판소리는 양반에서 일반대중으로 확산되어 소리꾼들도 대중의 취향에 맞는 소리를 해야 했다. 대중의 입맛에 소리를 변형시키길 거부한 이선유는 당연히 인기를 누릴 수 없었다. 40대 후반 진주로 이주해 간 이선유는 진주극장, 삼포극장의 대중무대에는 서지 않았다. 대신 권번(券番)에서 제자들을 길러냈다. 1905년 관기제도가 없어지자 진주 노기(老妓)들이 기생조합을 만들고 이것이 발전된 것이 진주권번이었는데 지금의 대안동 우리은행 뒷편에 자리 잡았다. 이 때 배운 제자들이 무형문화재 ‘진주검무’의 춘당 김수악(1926~2009), 판소리와 가야금의 명인 오비취(1910~1986), 함양 출신 판소리 명창 신숙 등이다.

이선유가 활동한 진주는 소리꾼의 낙원이었다(최난경, 2013). 서부경남은 민족의 성산 지리산의 큰 정원이다. 그 중심인 진주는 산, 강, 들 그리고 인근 바다에서 물산이 풍부하게 생산된다. 조선 성종 때는 인구 기준전국 6대도시 중 하나였다. 행정과 군사의 중심지로서 고향을 떠난 관리과 군인들이 많이 살았다. 이들을 위해 발달한 것이 교방문화다. 진주목사 정현석이 1872년 ‘교방가요(敎坊歌謠)’를 편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뒤벼리의 아침은 여성들의 목 푸는 단가소리가 넘쳤다. 지리산의 정원을 판소리로 흥건히 적신 이선유의 또 하나 업적은 바로 ‘오가전집’의 발간이다. 61세의 이선유가 판소리 다섯마당(춘향가, 심청가, 화용도, 수궁가, 박타령)을 부르고 한학을 공부한 김택수가 이를 기록해 냈다. 1933년 봄 산청 대원사에서 완성되었다. 판소리의 장단과 아니리를 표기하며 출판한 판소리 사설집은 ‘오가전집’이 처음이다. 이선유의 조카딸 이윤례는 제1대 진주검무 인간문화재였다. 딸만 넷 둔 이선유는 동생 이선직의 막내아들 이재호를 양자로 두었다. 이재호는 ‘번지없는 주막’ ‘나그네 설움’ ‘단장의 미아리 고개’ 등의 천재 작곡가다.

 

최임식(LH 지역상생협력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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