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전 日사진속 징용자 이름 '만두와 장모'
74년전 日사진속 징용자 이름 '만두와 장모'
  • 연합뉴스
  • 승인 2019.02.17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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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라이프’誌 실린 ‘묘표’ 사진…日시민들이 강제징용 피해자 확인
한·일 시민단체·총련계 재일동포 힘 모아 이르면 내년 1월 발굴
 
16일 ‘동아시아공동워크숍’이 일본 오키나와 북부 모토부초(本部町)의 해안가에 위치한 주차장에서 연 조선인 강제동원 희생자 추도식에 과거 이 곳에서 촬영됐던 ‘묘표(매장지를 알리기 위해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은 표식)’ 사진이 펼쳐져 있다. 1945년 5월28일자 미국 잡지 ‘라이프(Life)’에 실린 이 사진은 이 곳이 군수물자 보급선 ‘히코산마루(彦山丸)’에 타고 있다 폭격을 맞아 조선인 숨진 김만두 씨와 명장모 씨의 매장 추정지인 것을 확인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연합뉴스

태평양전쟁 당시 격전지 일본 오키나와(沖繩)에 끌려와 억울하게 숨진 강제동원 피해자의 유골 매장지가 74년 전 우연히 카메라에 담긴 사진 1장과 일본 시민들의 노력으로 확인됐다.

한국과 일본, 오키나와의 시민단체,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계열 재일동포 등이 억울하게 타향에서 숨진 유골을 고향의 유족들 품으로 돌려주기 위해 함께 발굴작업을 하기로 했다.

17일 오키나와의 시민단체인 ‘오키나와 한의 비’에 따르면 이 단체는 1945년 5월 28일자 미국 잡지 ‘라이프(Life)’에 실린 사진과 주민 증언, 강제징용자 명부 등을 통해 강제동원 조선인 김만두(일본명 金村萬斗·사망당시 23세) 씨와 명장모(일본명 明村長模·사망당시 26세) 씨의 매장 추정지를 찾았다.

매장 추정지는 한국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관광지 ‘추라우미 수족관’에서 차로 불과 10분가량 떨어져 있는 곳이다. 투명한 바닷물로 유명한 ‘에메랄드 비치’에서도 가깝다.

첫 실마리가 된 것은 1945년 5월 28일 발매된 라이프지(誌)의 사진 1장이다. 이 잡지는 당시 ‘오키나와-일본인만 아니라면 살기 좋은 곳’이라는 제목의 르포를 게재했다.

르포는 첫 사진으로 오키나와 북부 모토부초(本部町)의 해안가에서 촬영된 나무 ‘묘표’(매장지를 알리기 위해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은 표식)를 담고 있었다.

모두 14개의 묘표 중에는 ‘김촌만두(金村萬斗)’와 ‘명촌장모(明村長模)’라는 창씨개명한 한국인의 이름으로 보이는 글씨가 있었다.

사진이 촬영된 곳의 위치는 주민들의 증언으로 명확해졌다.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지점으로 현재는 주차장으로 쓰이는 곳에서 사진이 촬영됐고, 그곳에 ‘장작을 모아 시신을 태운 뒤 매장했다’는 주민 증언이 나온 것이다.

‘오키나와 한의 비’가 강제동원자 명부를 찾아보니 ‘金村萬斗’와 ‘’明村長模‘는 군속(군무원)으로 강제동원돼 1945년 1월 군수물자 보급선 ’히코산마루(彦山丸)‘에 타고 있다가 미군의 폭격을 받아 숨진 김만두(경남 남해) 씨와 명장모(전남 고흥) 씨였다. 이와 함께 묘표 중에 있던 ’半田充祇‘라는 인물도 조선인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파악됐다.

이미 이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이 매장 추정지는 유골이 묻혀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주민들은 주차장 중 유골이 묻혀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지점에는 주차를 하지 않고 있었고, 이로 인해 주차장 중 그 지점만 풀이 무성히 자라 있었다.

매장 추정지의 소유주인 가베 마사노부 씨는 “아버지로부터 유골이 묻혀있으니 집을 지을 수 없는 땅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설명했다.

오키나와는 태평양 전쟁 막바지 제국주의 일본군과 미군 사이에 격전이 치러진 곳이다. 전투에서 20만명 이상이 숨졌으며 한반도에서 오키나와에 강제로 끌려온 군인·군속·노무자·정신대원 중 약 1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키나와가 전후 미군정 산하에 있었던 까닭에 이 지역의 유골 수습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유골이 매장되거나 방치된 지 오래돼 이제 와서 발견하더라도 신원 파악이 쉽지 않다.

’오키나와 한의 비‘의 오키모토 후키코 활동가는 “매장지와 묻혀있는 사람의 신원이 이번처럼 발굴 전부터 추정 가능한 상황은 전례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확인된 모토부초 유골들의 ’사연‘은 강제동원자 유골 발굴과 조국 송환 활동을 벌이는 한국 시민단체들에 알려졌고,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와 조선총련, 매장지인 오키나와 시민들이 힘을 모아 유골들의 한(恨)’을 풀어주기로 했다.

한국의 평화디딤돌, 일본의 동아시아시민네트워크와 소라치민중사강좌, 오키나와의 유골 발굴 단체 ‘가마후야’는 조선총련계 재일동포들과 함께 조만간 이 지역 유골 발굴을 위한 연합체를 결성할 계획이다.

오키나와에서 강제동원 노동자의 유골 문제를 주제로 ‘동아시아공동워크숍’ 행사를 열고 있는 이들은 16일 매장 추정지에 모여 추도식을 열기도 했다. 추도식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도 함께 개최했고 김홍걸 상임의장도 참석했다.유골 발굴은 준비 작업을 거쳐 내년 1월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참가 단체들은 겨울방학 기간 발굴 벌여 각기 배경이 다른 동아시아의 젊은이들이 발굴 작업을 함께 하도록 할 계획이다.

‘오키나와 한의 비’는 오키나와 현지 언론 등의 도움으로 김만두와 명장모의 유족을 찾는 데에도 성공했다. 만약 유골이 발굴된다면 타향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뒤 방치돼왔던 이들이 꿈에도 그리던 고향 땅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오키모토 씨는 “일본은 전쟁 중 억지로 끌고 왔으면서도 전후에는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다”며 “발굴을 통해 한을 풀지 못한 채 오키나와의 깊은 땅속에 묻혀있던 희생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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