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토산 야끼토
끼토산 야끼토
  • 경남일보
  • 승인 2019.03.0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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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호(진주문화원 운영위원회 운영실장)
조재호

“끼토산 야키토 를디어 냐느가 총깡∼총깡 서면뛰 로디어 냐느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지 궁금해 할 말이다. 1970년대 초등학교 시절 딸랑거리는 책 보따리를 허리에 묶고 집으로 가는 길에서 그야말로 깡총깡총 뛰어가면서 불렀던 동요 ‘산토끼’ 가사를 거꾸로 부른 것이다. 약간의 중독성이 있어서 한참 동안 이러고 다녔는데 부모께서는 “무슨 소리냐”며 타박을 했다.
산골의 작은 학교는 산기슭에 조개처럼 붙어 있었다. 운동장은 불도저가 대충 깎아 넓혔기 때문에 바닥이 울퉁불퉁해 축구를 하면 공은 연신 인근 논바닥으로 튕겨가기가 일쑤였다.
수요일은 ‘자연학습의 날’이었다. 선생님들은 3∼4학년 남자 아이 40명을 데리고 학교 옆 뒷산으로 올라갔다. 절반인 20명은 산기슭에다 줄을 세웠고, 나머지 20명은 작대기를 허리에 채운 뒤 산을 우회해 9부 능선까지 올라 한 줄로 늘어서게 했다. 산 아래서 덤불 속을 헤쳐 토끼를 쫓아 올리면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내들이 작대기로 때려잡거나 그물로 가둬서 잡는다. 다리가 짧아서 위로만 달아나는 토끼의 성질을 이용한 기발한 방법으로 일명, 토끼몰이다. 당시에는 토끼가 많아 한번 출동할 때마다 20여 마리는 거뜬히 잡았다. 그렇게 잡은 토끼는 선생님들의 몫이었다. 두 세 시간 뒤 하교시간이 될 무렵 선생님들은 잡은 토끼를 요리해 파티를 벌였다. 정작 토끼를 잡았던 아이들은 교실 창문사이로 맛있는 토끼 굽는 냄새만 맡아야했다. 배고픈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끼토산 야키토∼”를 목청껏 불렀다. 그런 식으로 부른 것이 유행이었는지, 아니면 배고픈 아이들이 배알이 틀려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렇게 목소리를 크게 해서 불렀다.
반세기가 채 안 지난 지금, 그 많던 토끼들이 보이지 않는다. 매주 산을 다녀 봐도 그림자도 안 보인다. 토끼를 잡는 사람도, 상위 포식자 살쾡이도 그리 많지 않은데 토끼는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일부에서는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집을 나가 야생화하면서 새끼를 잡아먹는 바람에 개체수가 급격히 줄었다고 말한다. 며칠 전 산행 중 토끼흔적을 봤다. 동글동글하게 생긴 토끼의 똥이었다. 손에 얹어 자세히 보니 각종 열매부스러기와 풀 따위가 힐끗힐끗 보였다. 토끼를 직접 보지 못했지만 흔적만 봐도 반갑기가 짝이 없었다. 똥을 보고 반갑다니, 웃음이 나왔다. 멸종하지 않고 어디, 이 산골짝에 아직 살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하산 길에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다시 한 번 “끼토산∼야끼토∼”를 신나게 불러봤다.

 

조재호(진주문화원 운영위원회 운영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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