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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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9.03.0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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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 문인들, 그 중에 이형기(6)

대학 3학년에 첫 대면한 이형기 시인
국제신문사 서울지사를 찾아갔으나
엇갈려 나가며 아쉬운 짧은 만남 그쳐
이후로 문인 모임으로 다시 인연 맺어
이번에는 이형기 시인과 필자와의 관계 또는 교류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 볼까 한다. 한 두달쯤 되었을까, 진주 SCS 기자분이 카톡으로 사진 한 장을 보내주면서 영남예술제 1회대회 시상식인데 교수님은 어디쯤 위치해 있느냐고 물었다. 가만히 보니 사진 속에는 창제자 설창수 시인, 박노석 시인, 구상 시인 등이 보이고 맨 앞줄에는 이형기가 비교적 덩치가 있는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이 때는 1949년 11월이니까 필자는 7살 먹는 나이였고 초등 1학년 때였으니 사진에 있을 턱이 없었다. 이형기는 필자보다 10세 연장이므로 17세때 찍힌 사진이었다. 필자가 그 기자에게 “나는 거기 없어요”하고 대답해 주었다. 그 기자는 필자가 ‘개천예술제 60년사’를 대표 집필했기 때문에 아마도 그 시기쯤의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필자가 이형기 시인을 첫대면한 때는 1964년 10월 필자가 대학 3학년인데 동국문학제 행사 프로그램을 선배 문인들에게 나눠주러 국제신문사 서울지사를 찾아갔던 때였다. 소공동 어디 빌딩이었는데 계단을 밟아 오르는데 이형기 시인은 반대로 바쁜 일이 있어 나가는 중이라며 안내장을 받아 들고는 지도교수 조연현 선생의 지시라면 그대로 하겠노라고 방문한 우리 일행을 안심시켜 주었다. 통성명도 못하고 그냥 만남의 기회가 무산되어버리는 아쉬움을 갖게 되었다.

두 번째는 필자가 문단 데뷔를 한 이후인데 1967년 한국문인협회 가을 임간세미나가 경기도 광양의 세조능 주변에서 열렸을 때 그때 200여명 문인들 속에서 이형기 시인을 만나게 되었다. 마침 박재삼 시인과도 세트로 만나게 된 것이다. 세트란 말은 개천예술제 동시 입상자를 한꺼번에 만나게 되었다는 뜻이다. 광능에서 임간 세미나를 마치고 서울까지는 몇 대의 버스에 분승해서 종로에 와서 뿔뿔이 친소관계에 따라 각기 행방을 정해 흩어졌는데 이형기 시인팀은 종묘로 들어가 남은 술을 마셨다. 필자는 흥부 같이 착하게 생긴 박재삼 곁에서 선배들 하는 대로 따라 했다.

이형기시인은 박재삼을 보고 강희근 시인은 박재삼과 시가 비슷하니 잘해 보라고 당부해 주었다. 그때 옆에는 누가 따라왔는지 기억에 뚜렷하지 않다. 강태열 시인, 강민 시인 등이 있었던지가 아련하다.

세 번째는 필자 중심으로 진주문협에서 제정한 ‘남명문학상’ 시상식에서의 만남이었다. 1회는 본상 수상자가 없이 신인상에 시조시인 강호인이 수상했고, 2회때는 본상 수상자로 이형기 시인이 심사하여 거창출신 신중신 시인의 시집 ‘모독’이 수상 대상이 되었다. 심사소감을 말하러 이형기 시인은 진주까지 와서 진주에서 남명정신으로 상을 제정한 의미가 깊다고 말하고 신중신 시인의 시집 ‘모독’은 거창사건을 소재로 쓴 의미 있는 시집이었다고 평했다.

네 번째는 필자가 경상대학교 국문과 교수가 된 1978년 이후 진주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첫 번째로 쓴 ‘김수영론’을 두고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필자에게 애정어린 지도를 해준 것이 잊히지 않는다. 시는 형식론자들이 금과옥조로 내세우는 형식의 안정감 같은 것이 시의 우열을 결정지우는 것이 아니라 문법이나 문장 맥락의 위에 놓이는 정신 같은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 아닌가. 필자는 이때 이형기 시인이 문학의 순수성을 옹호하는 것만으로 알았는데 문학의 리럴리티도 때로는 형식을 초월하는 가치를 지닐 수 있음을 지적함에 놀랐다. 이 주장에 필자는 잠시 머리가 헷갈렸다. 순수와 리얼리즘이 때로는 한 배를 탈 수 있는가에 대해 그 개념이 빨리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찬찬히 생각하는 가운데 그 둘의 변증법적 통일이 있을 수 있겠다는 판단에 이르면서 아, 필자는 그 문제에 대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필자는 이때 이후 작품 보는 눈이 한 단계 높아지는 스스로의 안목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작품을 읽으면 그 너머를 볼 수 있는 개안 같은 것, 그런 것이 필자에게로 와 있음을 실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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