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의 매천야록 문화재 된다
황현의 매천야록 문화재 된다
  • 임명진
  • 승인 2019.03.11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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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일본에 항거
절명시 남기고 순절
본보 1910년 10월11일 게재
“새와 짐승이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버렸구나 /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날 생각하니 /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구나”

경남일보가 1910년 10월 11일자 지면에 게재한 매천 황현(1855∼1910) 선생의 절명시가 담겨 있는 ‘매천야록’이 문화재로 공식 등록된다.

11일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매천야록’ 등 경술국치 직후 순절한 매천 황현과 관련 있는 문화유산 4건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황현 선생은 조선말부터 대한제국기의 역사가이자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이다.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 통감 데라우치가 체결한 ‘한일병합조약’이 공포됐다. 조선이 일본 식민지로 전락한 이른바 경술국치가 일어나자 매천은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견디지 못하고 1910년 9월 10일 절명시를 남기고 순절했다. 황현 선생은 “선비는 당당히 죽어야 한다”는 말을 동생 황원에게 남겼다. 매천은 지리산 자락 구례군 광의면 수월리 월곡마을 ‘대월헌(待月軒)’에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은 올해로 100년째를 맞는 3·1 만세운동을 태동시키는 한 발단이 됐다. 황현 선생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됐다.

매천야록은 1864년 대원군 집정부터 1910년 경술국치까지 47년간의 역사 등을 기록한 친필 원본 7책으로, 한국 근대사 연구에 중대한 가치를 지닌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에는 한말에 세상을 어지럽게 했던 위정자의 사적인 비리·비행과 특히, 일제의 침략상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으며, 이에 대한 우리 민족의 끈질긴 저항 등이 담겨 있다. 자유로운 방식으로 보고 들은 대로 기록했다.

당시 경남일보는 ‘시일야방성대곡’을 쓰고 일제에 패망한 울분을 절절히 토해낸 위암 장지연 선생이 주필로 있었다. 경남일보는 황현 선생이 순절하고 한 달여가 지난 1910년 10월 11일 그의 절명시를 게재해 전국에 알렸다. 경남일보는 절명시를 게재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됐다.

황현 선생은 진주 기생의 의기를 칭송하며 을사오적의 추태도 기록했다. “진주 기생 산홍(山紅)은 빼어난 미모와 기예를 갖췄다. 이지용이 천금을 주고 불러 첩으로 삼고자 했다. 산홍은 사양하며 ‘세상이 대감을 오적의 우두머리라 합디다. 첩은 비록 천한 창기이오나 어찌 역적의 첩이 될 까닭이 있겠습니까?’ 하니 이지용이 대노하며 두들겨 팼다. 누가 시를 지었다. ‘세상 사람들이 나라 팔아먹은 놈을 좇아/ 비굴하게 웃으며 굽신거리는구나/ 그대들 금과 옥이 넘쳐도/ 산홍의 일점 단심을 사기는 어려우리.’”

문화재청이 이번에 등록 예고된 문화재는 ‘매천야록’, ‘오하기문’, ‘매천 황현 시문, 관련 유묵·자료첩, 교지·시권·백패통’, ‘대월헌절필첩’ 등 매천 황현 관련 4건을 포함해 윤희순 ‘의병가사집’, ‘서울 한양대학교 구 본관’ 등 총 6건이다. 서울 구 공군사관학교 교회는 이번에 문화재로 등록됐다.

‘오하기문’은 황현이 저술한 친필 원본 7책으로 자유로운 방식으로 당시의 역사를 보고 들은 대로 기록하였으며, 흔히 ‘매천야록’의 초고로 추정된다. 19세기 후반부터 1910년까지의 역사적 사실과 의병항쟁 등을 비롯한 항일활동을 상세하게 전함으로써 한국 근대사 연구에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매천 황현은 ‘한말삼재’, ‘호남삼걸’로 이름을 날린 문장가였다. ‘시문과 유묵·자료첩, 교지·시권·백패통’은 그의 친필 시문 7책과 그의 지기들이 보낸 서간, 신문기사 모음과 같은 다양한 자료를 포함한 유묵·자료첩 11책, 황현이 1888년 생원시에서 장원급제한 교지와 시권, 이를 보관한 백패통 등이다.

‘대월헌절필첩’은 황현이 지은 절명시 4수가 담겨있는 첩으로, 양면으로 되어 있으며 서간과 상량문 등도 포함되어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황현의 시는 우국충절의 지식인으로서 책임의식이 깊이 투영된 구국애민의 시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당대 제일의 문장가들과 교유한 서간, 당시의 신문기사 모음 등을 통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국가적 위기와 사회 상황, 지식인들의 동향을 살필 수 있는 희귀한 자료”라고 말했다.

이번에 등록 예고한 ‘매천야록’ 등 6건은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등록될 예정이다.


임명진기자 sunpower@gnnews.co.kr

 
황현의 매천야록 자료제공=문화재청
황현의 매천야록 자료제공=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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