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한 알의 비밀’
‘대추 한 알의 비밀’
  • 경남일보
  • 승인 2019.03.1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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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위(칼럼니스트)
독립협회의 청년지도자로 입헌군주제를 목표로 맹렬한 활동을 펼친 이승만은 반역음모로 체포되어 한성감옥에 있으면서 ‘독립정신’이라는 제목의 책을 저술했다. 옥중기라고 해도 좋을 그 저술은 간수들의 눈을 피해 집필된 것이다. 감옥생활 7년째에 접어 든 해였다.

그 ‘독립정신’ 서문에서 이승만은 이렇게 쓰고 있다. “지금 일본인들이 한국에 멸종주의를 쓰며 난리인즉…한국인에게 이것을 알려주려면 독립정신을 권하는 것보다 더 긴한 글이 없다….”

이로부터 10년 뒤 우리는 독립선언서를 만난다. 1919년 정월이 되자 일본에 유학하고 있던 학생들이 2·8독립선언을 계획한다는 소문과 함께 이광수가 작성한 독립선언서 초안이 국내로 유입되었다. 그때 마침 헤이그 밀사 사건에 책임을 지고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된 고종이 별안간 승하하였다. 독립선언의 기회는 바로 이때다 하고 손병희를 중심으로 한 민족대표들이 모여 3·1운동을 계획하기에 이른다.

2·8독립선언과 3·1독립선언문은 각기 이렇게 시작된다.

“조선 청년독립단은 아(
) 2천만 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득한 세계만국의 전(前)에 독립을 기성(期成)하기를 선언하노라.(2·8선언)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此)로써 세계만방에 고하여 인류평등의 대의를 극명(克明)하며 차로써 자손만대에 고(誥)하여 민족자존의 정권을 영유(永有)케 하노라.(3·1독립선언)

대한민국 헌법은 그 전문에서 대한민국은 바로 이 3·1독립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나라임을 선언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우연히 독립한 나라도 아니요 연합국의 승리로 주어진 나라도 아니라는 얘기다. 독립운동을 통해 건립된 나라라는 얘기다.

3·1운동의 과정과 독립의 역사를 보면서 느껴지는 감정은 장석주의 시 ‘대추 한 알’에 모여진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저게 혼자서 둥글어 질리는 없다/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저 안에 땡볕 두어 달/저 안에 초승달 몇 날/ ”

참으로 그렇다. 3·1운동의 과정 하나만 보아도 얼마나 많은 태풍과 천둥과 벼락을 겪었겠는가? 무서리 내리는 밤과 땡볕이 내리 쬐는 한여름은 또 얼마나 겪었을까? 손병희는 을사오적으로 첫 번째 가는 매국노인 이완용까지를 이 운동에 가담시키기 위해 그를 만나 거사계획을 설명하였다. 이완용은 이 계획에 참여하기를 거절하였으나 총독부에 밀고는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당시 종로경찰서에 근무하던 한국인 형사 신승희(일명 신철)라는 사람도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는 현장을 적발하였다. 인쇄소 사장인 이종일(33인중 한사람)이 깜짝 놀라 그를 데리고 손병희에게 데려갔다. 그러자 손병희는 “당신도 조선의 아들이니 며칠만 눈감아 달라”면서 돈 5000원(쌀가마 1111가마분)을 형사에게 쥐어줬다. 그가 그것을 받지 않고 경찰에 보고하였으면 어쩌면 특진에 특진을 했을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보고하지 않았다. 다만 훗날 그 형사는 뇌물죄로 체포되었다가 자살하였다고 한다(조선일보). 대추 한 알이라도 저절로 붉어 질 리 없고 혼자서 둥글어 질 리 없는 이치가 생생히 살아 있는 현장이었다.

그러나 자라는 학생 누구에게도 독립선언서를 읽어 보도록 권하는 학교도 스승도 없었으니 대추 한 알의 비밀을 누가 짐작이나 할 것인가? 3·1운동 100주년이라고 세상이 시끄럽도록 야단법석을 떨고 있지만 그것도 한때뿐,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흐지부지 되고 말듯해서 하는 얘기다.
 
김중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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