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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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9.03.13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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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만나러 가는 길
 
 


23전 23승 신화의 첫걸음인 옥포해전

당시 부산진과 동래성, 남해안 여러 섬을 점령한 왜적이 거제도를 향해 진격해 오자, 이에 당황한 경상우수사 원균은 전선과 무기들을 수장시키고 수군 1만 명을 해산시킨 뒤, 남해현 앞바다에 피신해 있다가 율포만호 이영남을 이순신에게 보내어 구원을 요청한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휘하 장수와 의논한 끝에 출전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조정에 알렸다. 이순신은 5월 4일, 전선(戰船) 24척, 협선(挾船) 15척, 포작선(鮑作船) 46척, 모두 85척을 이끌고 본영(지금의 여수)을 출발해 소비포(고성군 하일면 춘암)에서 하룻밤을 자고 당포 앞바다에서 원균의 전선 4척, 협선 2척과 합세해 송미포(거제시 동부면)에서 작전을 짜면서 하룻밤을 잔 뒤, 5월 7일 전 함대가 동시에 출항해 옥포 근해에서 노략질을 일삼는 도도 다카토라의 군대를 기습하여 왜선 26척을 격파하고 왜군 4080명을 죽이는 대승을 거둔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첫 출전이자 첫승을 거둔 해전이다. 이후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 관음포 앞바다에서 전사할 때까지 23전 23승의 신화를 남겼다.

이순신 장군이 목숨 바쳐 쓴 신화의 첫 페이지를 만나기 위해 국민체력센터(원장 이준기) 명품 걷기 클럽인 ‘건강 하나 행복 둘’ 회원들과 함께 ‘충무공 이순신 만나러 가는 길’ 트레킹을 떠났다. 충무공 이순신 만나러 가는 길, 무엇을 만나러 갈까?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공원, 아니면 첫 해전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둔 장군의 발자취, 23전 23승 신화의 첫걸음. 물론 이것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필자는 인간 이순신을 만나고 싶었다. 왜 영웅 이순신이 아닌 성웅 이순신이라는 칭호를 받았을까 하는 화두를 품고 떠났다.



 
 


조선수군 모두가 승리의 주역이다

‘충무공 이순신 만나러 가는 길’은 옥포해전이 있었던 옥포항에서 김영삼 대통령 생가까지 8.3km 구간의 둘레길이다. 필자는 옥포만을 끼고 조성된 둘레길을 걸으면서 이순신 장군의 인간으로서의 체취를 좀 더 심도있게 느끼고, 그 정신을 마음속 깊이 다지기 위해 거제도 옥포항에서-데크길-팔랑포-옥포대첩기념탑-덕포해수욕장까지 5.4km구간을 트레킹 했다.

‘충무공 이순신 만나러 가는 길’은 옥포 앞바다와 갯바위 위에 놓인 나무데크길에서 출발했다. 옥빛 바닷물 위 눈부시게 반짝이는 윤슬 너머 조선소의 웅장한 모습이 둘레길의 조화로운 풍경을 다소 깨뜨리는 듯했지만, 조금 더 데크길을 걸어 바다 쪽으로 들어가자 옥포만과 항구, 조선소와 바다 위에 뜬 예인선, 바지선들이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놓고 있었다. 1km 정도 이어진 해안 데크길이 끝나자 운치있게 펼쳐진 숲길이 나타났다. 숲길을 따라 걸어가자 길섶에는 옥포해전에 출전했던 장수들에 대한 이야기가 적힌 안내판들이 곳곳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 옥포해전을 비롯해 조선수군이 이룩한 기적적인 승전은 이순신 장군 혼자의 공이 아니라 참전한 모든 수군들의 승리요, 공이다. 모든 이들의 공을 기리고 참전했던 이름 모를 수군들 모두가 승리의 주인공임을 탐방객들에게 알리기 위해 ‘충무공 이순신 만나러 가는 길’이 조성된 것 같아 더욱 의미가 깊고 감동적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살아서 이 길을 걸으신다면 장군의 애민정신과 부하를 내 몸같이 사랑한 마음이 안내판 속에 그대로 담겨 있는 걸 보고 몹시 흐뭇해하실 것 같았다. 옥포만호 이운룡, 녹도만호 정운, 소비포권관 이영남, 남해현령 기효근, 지세포만호 한백록, 영등포만호 우치적 등의 장수들과 함께 계급장 하나 없이 참전한 수군들 모두가 위대한 군인임을 둘레길 모퉁이마다 선 안내판이 탐방객들에게 일깨워주고 있었다.

한적한 어촌마을인 팔랑포를 지나 가파른 숲길로 접어들어 등허리에 땀이 밸 정도로 걸어가자 산기슭 높게 솟은 하얀 탑 하나가 나타났다. 높이 30m나 되는 옥포대첩기념탑이다. 정말 당당하고 기품있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기념탑 바로 밑에는 옥포루가 옥포만 푸른 바다를 지키고 있었다. 옥포루 아래로 참배단, 기념관, 이순신 장군 사당 등을 조성해 놓은 옥포대첩기념공원이 있었다. 기념공원에서 덕포해수욕장까지는 소나무와 편백나무, 그리고 잡목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숲길을 이루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각양각색의 성격을 지닌 여러 장수와 군사들을 공평무사하게 잘 아울러 마침내 하나의 강한 수군으로 만든 것처럼, 수종이 다른 여러 나무들이 어우러져 훌륭한 둘레길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자연을 닮아가는 것처럼 자연 또한 주인의 심성을 닮아간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민족의 자존을 지킨 성웅 이순신

역사학자들은 충무공을 왜 영웅 이순신이라 하지 않고 성웅 이순신이라고 칭할까? 성웅이란 호칭을 얻기까지는 기적에 가까운 전과(戰果)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이순신 장군의 가치관과 정신, 인간적인 품성이 더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순신 장군을 역적으로 몰아 죽이려고 한 임금과 벼슬아치들이 전세가 매우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되자, 자신들의 목숨을 잇기 위해 이순신을 풀어줘서 백의종군하게 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장군은 개인적인 억울함이나 자존심은 젖혀두고, 왜군들에게 짓밟힌 조선과 조선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이 땅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기꺼이 전쟁터로 내려가 전력을 다해 왜군과 싸우다 끝내 목숨을 잃게 된다. 이것이 이순신의 정신이요, 가치다. 그래서 역사는 이순신 장군에게 성스러운 영웅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주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차창에 비친 노을 속에 이 세상 가장 거룩하고 위대한 사람의 뜨거운 가슴이 지금도 서녘 하늘에 붉게 익어가고 있음을 보았다.



박종현(시인, 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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