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규제는 아무도 못 풀어내는 것인가
[경일칼럼]규제는 아무도 못 풀어내는 것인가
  • 경남일보
  • 승인 2019.03.17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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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용환(법학박사·전 사천경찰서장)
규제는 공무원의 힘이라고 한다. 규제는 민간인을 간섭·통제하기 때문이다. 나쁜 규제일수록 그 쾌감은 달콤하고 악성 규제일수록 중독성이 강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규제 개혁은 어려운 것인가? 역대 정부에서 규제 혁파를 들고 나왔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규제 개혁은 관료와의 전쟁이기 때문에 난공불락이다. 다만 일부 성공노하우도 간혹 있었다. 1970년대 후반 신임이 두터운 모 재무장관의 회고록에서 볼 수 있다. 그 시절 재무부에 외환관리과가 있었다. 해외여행때 갖고 갈 달러의 한도는 사전허가제였는데 외환관리과의 그 규제는 매우 까다로웠다. 장관은 규제를 풀어 은행에 넘기라고 했다. 장관 지시는 실천되지 않았고 담당 공무원들은 시큰둥했다. 장관의 집념은 치열했다. 그는 비상수단을 썼다. 담당국장을 바꾸는 인사조치를 했다. 그래도 그 아래 과장이 규제를 고집했다. 그래서 담당부서를 폐지했다. 외환관리과를 아예 없앴다. 그랬더니 규제가 풀어졌다. 장관의 경험은 명쾌하였다. “관료는 자기가 한 규제 권한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영국 과학자문관인 월포트 박사는 과잉규제가 생기는 근본적인 이유는 규제당국의 인센티브가 비대칭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규제를 안해서 생기는 피해는 직접적이고 바로 눈에 보이지만, 과잉규제에 의해 생기는 피해는 대개 장기적이고 간접적이기 때문에 규제 당국은 웬만하면 규제를 하려고 든다는 것이다. 이렇듯 규제 혁파가 어렵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이유를 찾고 고쳐야 할 것이다. 우선 규제 개혁에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규제 권력 보유자인 관료와 정치인의 저항에 부딪히기 때문일 것이다. 규제는 이들에게 만능의 철밥통이기에 누군가 뺏으려 들면 사력을 다해 지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규제의 얼굴은 민간의 얼굴만큼 다양하기 때문에 대상 선정이 모호하고 불투명할뿐더러 해법 또한 복잡할 수밖에 없고, 어떤 규제는 꼭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환경·노동규제 중에는 상당수 국가 기본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것도 많다. 또한 의원입법이 남발돼 규제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의원입법을 통해 규제를 만드는 것을 제한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또 난제가 있다. 병의 원인을 알았다고 모두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유를 알고 있다고 변심한 연인을 되돌릴 수 없는 것과 같다. 규제개혁도 그런 종류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순 없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한다. 대상을 우선 경제규제로 좁히고 비용부터 따져보면 어떨까 한다. 경제규제를 줄이는 것만큼 수조원의 돈이 생긴다는 것이 삼성경제연구소 연구결과이기도 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민의 이름으로 규제 권력의 저항을 물리치고 갈등을 조율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1997년 외환위기 때부터 경제와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과다한 규제를 뽑았다.

규제는 크게 나누면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인·허가, 둘째는 지원을 해 준 다음 그 지원이 정책 목적을 위한 방향으로 사용되고 있는가를 점검하는 감사, 셋째는 건강·안전·절약·환경에 관한 규제이다. 반시장 규제에 해당하는 인허가는 가난한 나라의 정부가 부족한 재원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사용하는 후진국형 규제다. 지원 감사는 지원이 있는 한 반드시 따라가야 하는 규제이고 건강·안전·절약·환경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선진국형 규제이다. 관료들이 버리고 싶어 하지 않는 규제는 인허가이다. 규제개혁을 한다고 역대 정부에서 강조하면 관료들도 후진국형 인허가 규제는 감추고 선진국형 규제를 줄여서 규제 건수를 줄였던 전시형 성과를 보여주곤 했다.

주용환(법학박사·전 사천경찰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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