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456)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456)
  • 경남일보
  • 승인 2019.03.2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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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문인들, 그 중에 송희복(1)
지역문인 속 불같은 평론 열정
45권 저서에 미발표 원고도 수권
‘비평 부재’ 경남문단 현실 극복
시의 고동소리를 찾는 해설 감동
문학평론가 송희복(1957) 교수는 부산에서 태어나 진주교육대학교를 다니면서 진주와의 인연을 갖기 시작했다. 교육대학을 다니면서 나름의 교육관을 세우고 있었는데 그것을 문학교육이라는 한 지향에 접목하고 있었던 듯싶다. 이런 뜻은 한 가지 계기가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독서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송교수는 진주교육대학교를 수료하고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로 편입하여 3년 수료하고 이어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거쳤다. 그 사이 그는 198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부문에 가작 입선하고 1990년에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부문에 당선하여 본격 평론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경남에서는 본격 문학 평론가가 여러 명 있고 또 실적을 보여주고 있었으나 경남문단에 비평부재라는 현실을 뛰어넘을 만큼의 실적에는 미치지 못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진주에 직장의 고삐를 매고 활동하면서 지역문인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대략 45권이라는 비평 저서를 출간한 것은 기적 같은 실적이라 할 만하다. 송희복 교수는 서울에 있을 수년간에는 중앙 문학 권력쪽의 지근거리에서 눈부신 진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진주로 내려와서는 그 지근거리가 사라지고 맨몸둥이로 비바람 눈비를 맞아야 하는 꼼짝없이 지역문인의 대열에 들어서고 만 것이었다. 그러나 송교수는 불 같은 정열로 연구하고 비평하는 일에 밤잠을 설쳐가며 실적을 내놓기 시작했다. 지금 그에게는 저서 5권의 원고가 미발표 원고로 비축이 되어 있다고 한다.

송교수의 가장 최근 저서는 지난 2월 18일자로 간행된 ‘3·1운동 백주년에 다시 읽는 불꽃 같은 서정시’(2019, 글과 마음)이다. 이 저서는 김 억의 <봄은 간다>(1918)에서부터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1942)에 이르기까지 일제 강점기의 24년 동안에 걸쳐 있는 명작들을 골라 해설을 붙였다. 모두 52편인데 시를 쓴 시인들은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간에 3·1운동을 경험했다.

이 저서의 서문인 <독자를 위하여>가 감동적이다.

“좋은 영화는 오래 기억되게 마련이다. 내가 영화 <일 포스티노>를 본지도 벌써 20년은 넘은 것 같다. 시인 네루다가 극화된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영화 속에서 망명지인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피신해 살고 있었다. 그는 평소에 소탈하고 순박한 표정의 한 젊은 우편배달부를 잘 알고 지냈다. 배우지는 못했지만 평소에 시를 사랑하는 마리오는 시의 의미를 자꾸 캐려고 한다. 이런 마리오에게 네루다가 조언하는 대목이 있다. ‘여보게 마리오. 시는 다른 말로 설명될 수 없어. 설명하려 들면 진부해지기 마련이지. 가슴을 활짝 열고 시의 고동소리를 들어야 해.’”

고동소리란 피의 순환을 위해 심장이 운동하는 소리다. 도대체 시의 고동소리는 어떤 소릴까? 나는 수십년간에 걸쳐 시를 읽고 공부하고 또 최근 십년간은 다섯 권의 시집을 상재하기도 했다. 아직도 시의 고동소리가 분명히 들려오지 않는다. 시로부터 들려오는 그 생명의 박동이랄까, 우주 생명의 리듬 말이다.

송교수의 <독자를 위하여>의 이 대목은 감동적이다. 비평가가 시인 네루다의 말처럼 시는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듣는 것이라는 데 동의하는 것이 감동적이다. 필자는 시를 읽는 것을 <맛보기>란 말로 설명하는 것이 네루다의 ‘소리’와 근사치에 이른 것으로 본다. 송교수는 비평가로서 당당히 시는 ‘소리’ ‘고동소리’를 듣는 것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네루다의 지적이지만 현장 비평가가 시인의 말에 동의하는 그 솔직함이 상당한 비평가의 자세로 인정된다.

우리는 시론 시간이나 창작시간이나 학생들이 뜻이나 의미, 관념의 틀로서만 시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을 보는데 이를 아무 코멘트 없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적폐인 것이다. 송교수는 문학 교육자로서의 깨우침과 비평가로서의 깨우침을 동시에 보여주는 가운데 시 읽기의 적폐적 태도를 지적하면서 그 반성 위에 일제하 52편의 시읽기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송교수의 ‘불꽃 같은 서정시’는 우리나라 유사 저서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이 갖는 상투성을 벗겨내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책으로 보인다. 이 한 권을 읽으면 52편에 관한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들이 집약되어 있고 반드시 거기 새로운 해석과 소리 읽기가 곁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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