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周易(주역)으로 풀어본 갑질문화
[기고]周易(주역)으로 풀어본 갑질문화
  • 경남일보
  • 승인 2019.04.02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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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기(통계청 진주사무소 조사행정팀장)
1997년에 괌에서 일어났던 KAL기 참사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당시 승객 중 225명이 사망하고 29명이 생존했던 처참한 사고의 원인으로 미국연방교통안전위원회는 음성정보 입력기의 일부를 해독한 상태에서 사고원인을 “착륙과정에서 관련자의 잘못”에 의한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사고 원인을 놓고 많이들 의아해 했다고 한다. 날씨, 기체 결함 등도 아니라서 사고원인을 알아내기가 어려웠다고. 그러다가 블랙박스에 담긴 추락 전 비행기 조종사들의 대화 내용을 듣고서야 원인을 알 수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조종 실수였고, 한국 비행사들의 권위적인 조직문화가 추락의 한 원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귀중한 생명을 두고, 부기장은 기장의 권위가 무서워 직언을 내리지 못했고, 기장의 잘못된 판단은 결국 수정되지 못한 채 대형인명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엄격한 서열문화는 특정 항공사만이 아닌 오랜 세월 이어져 온 한국 사회의 문화이다.

周易(주역)은 유교 경전중 三經(삼경)의 하나로서, 88개의 괘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학자들은 그 중 가장 아름다운 괘로 87번째인 地山謙卦(지산겸괘)를, 가장 추악한 갑질의 괘로 78번째인 山地剝卦(산지박괘)를 들고 있다.

地山謙卦는 높은 산이 낮은 땅 밑에 들어가 있는 형상이다. 높은 산이 자신을 낮추고 낮은 땅을 섬기는 모양이다. 佛家(불가)에서는 和光同塵(화광동진), 隨順衆生(수순중생)이라는 말이 있다. 깨달음을 얻은 부처가 자신의 고결함을 감추고 더럽고 추악한 낮은 중생의 옷을 입는다는 말이다. 중생을 한없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성경에서도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모습이 나온다.

갑질을 뜻하는 山地剝卦는 높은 산이 낮은 땅위에 군림하는 형상이다. 얼핏 보기엔 산이 땅위에 있으니 정상적인 형태인 것 같으나, 周易(주역)은 이런 모양을 風飛雹散(풍비박산)으로 표현하고 있다. 가진 자가 없는 자를,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잘난 자가 못난 자를 짓밟는 사회는 복종과 침묵을 강요하고 불법과 비리가 판을 치며,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사라진 흑암의 장이 된다는 뜻이다.

老子(노자)는 최고의 선을 上善(상선)이라 부르며, 이것을 물에 비유한다. 물은 한없이 낮은 곳으로 흐르며, 자신을 낮추고 일정한 틀을 고집하지 않는다고 했다. 공자도 君子不器(군자불기)라고 하였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자신의 고집을 버린다는 말이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8년 출생 및 사망통계 잠정 결과’ 자료를 통해 우리나라는 34년 만에 합계출산율이 1명 보다 적은 0.98명으로 나타났다.

얼마전 발표되었던 젊은이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로서 가장 큰 이유가 “이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없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복은 돈으로도 살 수 없다. 설령 가진 것이 많지 않다 하더라도, 사회 구성원 간에 배려와 사랑이 넘친 다면 그 곳은 천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사회도 물질의 풍요를 쫓아, 가장 소중한 사람의 인격을 모독하는 저급한 사회양상을 버리고, 섬김의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길인지를 스스로에게 되묻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야 할 때인 것 같다.



강정기(통계청 진주사무소 조사행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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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환 2019-04-02 20:10:10
선생님의 말씀을 보건 데, 그 깨달음의 깊이가 한이 없고, 그 높이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부디, 우리 중생들을 버리지 마시고, 신분을 드러내시고 가르침을 펼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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