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記憶)을 기록(記錄)으로
기억(記憶)을 기록(記錄)으로
  • 경남일보
  • 승인 2019.04.1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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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완(칼럼니스트)
말이 생겨나고 문자가 발명되어서 그런지 인류는 주로 말로써 의사소통을 했다. 문자가 발명된 이후에도 일상에서 문자보다는 말을 더 많이 사용했고,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록보다는 말에 의존하여 가정·공공기관·국가중요문서·역사적 사실들도 때가 지나면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말은 같은 말이라도 서로 다른 의미와 분위기로 전달할 수 있고 내용을 강조하거나 바꾸어 말할 수 있는 즉시성·동시성을 가진 의사소통의 기본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휘발성과 전파될수록 달라지고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기 어렵다. 반면 글은 불변성·기록성·순차성·일관성·수정이 가능해 주워 담을 수 있어 상대방에게 의미를 더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요즘은 메시지나 카톡이 대세다. 의사전달이 확실하고 기록성이 뛰어나 합리적인 소통수단 때문일 것이다. 전할 내용이 있는데 전화를 이용할지, 문자로 전달할지 말과 글의 특성을 이해하면 쉽게 선택가능하다. 그런데 아직도 청문회나 재판과정에서 질의를 하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를 반복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세월이 흘러 기록이 없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기록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이 있다. 모 일간지에 따르면 이 국무총리는 지난 2014년 2월 10일 자신의 SNS를 통해 또 한 권의 수첩을 다 썼다는 것을 알리며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 한다’를 차용했다. 당시 그는 “또 한 권의 수첩을 다 썼다. 두 달에 한 권꼴로 사용 한다”며 “바지 뒷주머니에 수첩을 꼽고 다니며 메모하는 것이 스물아홉 살부터 올해로 36년째다”라고 했단다.

국무총리라서가 아니라, 기록에 관한 한 국민들이 존경하고 본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날그날에 있었던 중요 일들을 기록(지시·복명 및 보고·실천)한다면 그 보다 더 명확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에 관한 거울이 없을 것이다. 필자도 40여 년의 주요일과를 기록한 메모지를 보관하다 ‘종심(70세)역에서’의 회고록을 집필해보니 추억과 기억에 불과할 오랜 옛 일들을 재생하는 데는 기록보다 더 중요한 자료가 없었음을 깨달았다.

물론 기록으로 인한 필화(筆禍)사건(황용주/1964, 오적/1970, 한수산/1981, 한라산/1987 등)도 많았다. 역사적 필화사건 즉, “사초(조의제문)에 기인한 무오사화”로 김종직은 부관참시(剖棺斬屍)당하고 제자들은 죽거나 귀향 보내졌으며, 한일병합조약 체결 직후 “경남일보는 황현의 절명시(絶命詩)”로 정간 처분을 받았고, 1959년 “경향신문은 칼럼 여적(餘滴)”으로 폐간을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은 부당한 압박에 항거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우리 국민들은 말은 잘 하면서도 메모나 기록은 잘 하지 않아 기억으로 남았다가 세월이 지나면 모두 잊어버린다. 사람들은 흔히 언어가 기본이고 문자는 언어를 적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이 만든 문자는 우리의 가치관을 규정하고 바꾼다. 우리는 문화의 가장 핵심을 언어라고 하지만 긴 안목에서 보면 이 언어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문자고 기록이다.

게임이나 카톡을 하듯 어릴 때부터 기록하는 습관(習慣)을 가진다면 정치·경제·사회 등 제 분야에서 과학적·체계적·제도적인 발전뿐만 아니라 ‘청문회나 정치가들의 기억이 없다’ 등의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기록하는 습관은 유아부터 교육되어야 하며 어른들이 모범을 보일 때 빠르게 정착될 것이다. 기억을 기록으로 실천하는 국무총리님께 뜨거운 박수를 보내면서 전 공직자가 변화하기를 기대해 본다.
 
강태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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