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농 이규홍 선생의 독립유공자 서훈
백농 이규홍 선생의 독립유공자 서훈
  • 경남일보
  • 승인 2019.04.1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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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백농 이규홍(李圭洪) 선생은 1893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397번지에서 출생하여 어릴 때 한학을 수학한 후 일본 명치대학 법학부에 유학했다. 대학 졸업 후 1919년 상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청년단 출판부장을 역임하고 같은 해 임시정부 내무차장, 학무차장까지 역임했다. 양산과 경남 출신 중에서 임정의 최고 요인으로 활동하며 독립자금도 희사하였다.

임시의정원 제6회 회기(1919.8.18~9.17) 중에 현정건과 함께 경상도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임시정부 의정원 위원, 국민대표회기성회 위원을 지냈고, 1924년 재무총장, 1925년 외무총장과 재무총장, 1926년 의정원 부의장(임시정부 부주석)을 역임하였다. 1926년에는 김구의 추천으로 국무원에 임명돼 임시헌법개정 기초의원으로 활동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독립투사다.

상해에서 임정 요인으로 활동하다가 법정 전염병인 폐결핵에 걸려 고향인 양산으로 귀국하여 일본 경찰에 의해 요시찰 인물로 가택연금을 당했다. 이후 1939년 서거 때까지 외부활동을 못했는데, 사업한 것이 친일활동으로 의심받아 서훈을 받지 못했다. 백농 선생이 상해에서 귀국 후 가촌토지주식회사 사장, 환영자동차회사 무한책임사원으로 근무한 기록은 단지 처남과 아들이 하는 사업에 명의만 빌려준 것이다. 폐결핵으로 사업을 책임질 형편이 안 되었다.

경기도 파주시에 거주하는 이규홍 선생의 손자 이경우 씨가 지난 15일 양산을 방문하여 할아버지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위해 양산의 각계각층을 방문하여 관련 자료를 제출하며 도움을 호소한 바 있다. 필자는 이경우 씨와 동행하여 서형수 국회의원 사무실을 함께 방문하고 표병호 도의원과 통화를 하였다. 한편 상북면 대석리 생가를 방문하고 대석저수지도 둘러보았다. 

대석저수지는 이경우 씨의 부친(이종문)이 수리조합을 운영하며 사재를 털어 축조하여 희사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만든 대석저수지는 제방이 붕괴되어 주민들이 피해를 입은 바 있었다. 현재 저수지는 한국농어촌공사 소유로 되어 있다. 저수지 주변에 들레길 공사를 하고 있었다.

부친은 상해임시정부로 보내는 독립자금을 부산의 임정요원에게 전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조부가 본가의 대나무 숲에 땅을 파고 항아리에 돈을 보관하다가 독립자금으로 보낸 것이다. 이경우 씨는 월남전 참전용사로 3대 모든 집안 식구가 애국자라 할 수 있다. 조부가 독립유공자로 서훈받지 못해 평생을 어렵게 생활해왔다. 독립운동을 하면 삼대가 망한다는 전형이다.
 

심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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