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이 필 때면
찔레꽃이 필 때면
  • 경남일보
  • 승인 2019.04.1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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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남(시인·논술강사)
이신남

 

찔레꽃에서는 유년의 냄새가 난다. 찔레꽃에서는 그리움의 향기가 있다. 유년을 거쳐 성년, 노년이 되기까지 인생에도 적절한 배치가 있고 그 시기마다의 추억이 있으며 누구나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는다.

유달리 찔레꽃 향기를 좋아해서 해마다 이맘때면 그 향기를 맡으려고 찾아 나서기까지 했었던 기억이 있다. 3년 전 쯤‘써니포’와 함께 했었던 청산도 여행. 나에게는 눈빛과 목소리만으로도 서로를 알 수 있는 ‘써니포’라는 이름의 친구가 있다.

내 인생의 네비게이션, 그 모든 활동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엄지 척의 친구들로 네 명의 계집애들이다. 사계절 중에서도 특이함으로 전해지는 무언가가 있듯 연두의 계절만 되면 함께 꼭 가보고 싶었던 그 곳, 박두진 시에서도 나오는 ‘청산도’를 어느 봄날 완도를 거쳐 뱃길을 따라 떠났던.

각자 개성이 뚜렷한 우리는 마주보는 눈빛만으로도 웃음이 절로 나오기에 그날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가지며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 숱한 나무들, 무성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 둥둥 산을 넘어, 흰구름 건넌 자리 씻기는 하늘, 사슴도 안 오고, 바람도 안 불고…’ 박두진 시에 나오는‘청산도’의 정경에 대한 분위기를 적당히 외우는 부분만 낭송도 해 보며 그렇게 우뚝 솟은 푸른 산을 우리는 걸었다.

걷다가 깔깔거리며 웃고 군데군데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화살표 표시방향을 잘못 보아 30분이면 내려 올 거리를 두 시간 가까이 걸으며 헤매고도 웃을 수 있었던 우리는 더 이상은 힘들다며 산에서 못 내려가니 119를 부르자고 바닥에 퍼질러 앉아서도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언덕에 찔레꽃을 보고 환호하면서 찔레순을 따 먹던 어린 날 추억들까지 꺼내며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었던 날.

지나간 모든 순간들은 옛날이 되어버린 지금 다시 사월이 가고 오월이 또 오고 있다.

원색의 꽃은 아니지만 화장기 없는 사춘기 소녀들의 순수함을 보는 듯 꽃잎이 참 정겹다. 언덕 위 소담하게 피어 향기를 품어내는 찔레꽃을 보면 무작정 떠오르는 그때 청산도의 추억으로 보고 싶은 친구들 생각에 코끝이 찡해진다. 누구나 찔레에 대한 그리움들은 비일비재할 것이다. 살이 통통해 물오른 찔레를 꺾어 껍질을 벗겨내고 씹으면 상큼했던 그 맛이 연두빛 그리움이 되는 유년의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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