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대한항공의 정기 주주총회에서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 대표이사직 퇴진이 결정되었다. 한진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대한 항공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20년 동안 이어졌던 조양호 회장의 그룹 운영에 마침표가 찍혔다는 의미이다. 그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이었다고 평가받는 것은 대한항공 2대 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민연금의 상당한 영향력 행사의 배경에는 지난해 7월에 도입된 스튜어드십 코드가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 의결권 행사 지침은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의 기관투자자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개입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영국에서 시작되어 현재 캐나다와 일본에 도입된 이 제도는 기업의 배당확대와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취지로 시작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한 대한항공의 주주총회에 대해 여러 해외 언론은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경영 참여를 하는 ‘행동주의 투자’의 긍정적 사례로 평가했으며, 국내에서도 ‘연금 사회주의’란 몇몇 비판에도 대체로 긍정적인 여론이 조성되었다. 그러나 지난 4월 7일 조양호 전 회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서 여론은 뒤집혔다. 국민연금의 결정이 조양호 회장을 죽였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경영참여가 자유시장체제를 저해하고 대기업을 좌지우지 하여, 제2, 3의 조양호 회장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한진 그룹 오너 일가의 논란은 단순히 재벌들의 도덕적 일탈이 아니다. 논란의 시작이었던 ‘땅콩 회항’ 사건은 엄연한 범법 행위이며 여러 명품과 멸종위기종 동물에 대한 밀반입 의혹, 오너 일가의 일상적인 직원들을 갑질들은 말 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오너 일가의 모습들은 당연히 기업의 평판과 브랜드 가치를, 그래서 주식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
한진 사례는 대기업의 도덕적 해이, 법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의 대표 사례를 보여준다. 그리고 조양호 회장의 사망에 대해서 국민연금에 그 책임을 돌리고자 하는 여론의 태도는 우리 사회가 대기업에 도덕성과 범법에 대해 얼마나 관대한 태도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올바른 시장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의 견제 기능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으로 국민연금은 단순히 부의 재분배를 담당하는 역할 그 이상을 지게 되었다. 의결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국민연금은 이전부터 받는 비판과 우려, 즉 낮은 수익률과 인구 고령화로 인한 위기 등과 함께 많은 책임감을 지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스튜어드십 코드 등을 포함한 국민연금의 시스템에 대한 섬세한 혁신이 필요로 한다. 여러 비판과 낮은 신뢰 속에서도 이름대로 국민을 위한 연금으로서 역할 하여 국민들의 신뢰를 다시금 회복하기를 바란다.
정호석(진주교대신문사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