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 정문 ‘남문’ 추정 기단석 발굴
진주성 정문 ‘남문’ 추정 기단석 발굴
  • 정희성
  • 승인 2019.04.28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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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대첩광장 조성지 진주교 인근서 발견
市 “남문지 기단 확인 땐 우선적으로 복원”
진주대첩광장 조성지에서 진주외성 남문으로 추정되는 기단석이 발굴됐다. 진주시는 “남문은 진주성의 상징이자 주된 통과문으로 남문 기단석으로 확정될 경우 우선적으로 복원을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8일 진주시에 따르면 대첩광장 조성지 경계지점(진주교 인근)에서 진주외성 ‘남문’의 기단석으로 추정되는 석재가 발견했다. 문화재 발굴조사로 확인된 ‘남문’터의 추정 규모는 길이 약 15m, 너비 4m다.

진주외성 남문은 임진왜란 이후 축조된 것으로 조선후기 외성 남문위치는 기록과 진주성도 등 고지도를 통해 현재의 진주교 북측 사거리로 이어진 도로 일원으로 추정된다.

조규일 시장은 “110m에 달하는 진주외성에 이어 남문지로 추정되는 기단석이 발견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하며 “남문지가 맞다면 진주성 복원 사업 등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진주대첩광장 조성지에서는 지난해 4월부터 시작된 문화재 정밀발굴조사를 통해 통일신라시대 배수로부터 고려시대 토성, 조선시대 외성까지 발굴됐다.

여기에 진주외성 추정 남문지의 발견은 진주외성을 복원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진주시는 진주내성과 연계한 외성 복원 등의 방안이 구체적으로 정해지면, 관련 전문가와 시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은 후 진주대첩광장 조성방안을 마련해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시 관계자는 “이번에 발굴된 진주외성, 토성, 기타 유적 등을 잘 보존해 천년고도 진주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겠다”며 “진주성과 남강을 연계해 관광자원으로 재탄생시키겠다”고 했다.

진주성은 고려시대 말 흙으로 쌓았다가 이후 돌로 다시 쌓았다. 1603년 경상우도병영이 진주로 이전하면서 다시 수축(修築)됐다.

진주성은 1605년 축성 완료 이후 내성과 외성으로 나누어 기능을 분리했으며 17세기 이후 진주성은 내성에 내북문(공북문), 내동문(촉석문)이, 외성에 서문, 구북문, 신북문, 남문이 있었다.

정희성기자



 
진주외성 남문 기단석으로 추정되는 석재 모습. 진주시는 이곳이 남문터가 맞다면 우선적으로 복원을 하겠다는 입장을 28일 밝혔다. /사진제공=진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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