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아이였다
우리는 누구나 아이였다
  • 경남일보
  • 승인 2019.05.15 15: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소미(경상대신문 편집국장)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보호의 정신을 높임으로써 이들을 옳고 아름답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나도록 하기 위하여 매년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한다.(후략)’ 지난 5일, 어린이날은 아동복지법 제6조에 명시된 법정 공휴일이었다.

어린이날 탄생 이전의 어린이들은 ‘애기, 애새끼, 어린것, 아이들, 애, 애들, 계집애’ 등으로 불렸다. 대개의 어린이들은 농사일을 하거나 도시로 나가 공장에서 일을 했다. 방정환 선생은 아이들이 사회에서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에 눈을 뜨고 소년운동을 펼쳤다. 그러고는 아이를 인격을 가진 한 사람의 독립된 사회 구성원으로 대해야 한다는 의미로 ‘어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정환 선생의 정신은 점점 옅어져가는 듯하다. 최근 SBS ‘영재발굴단’에 출연했던 화가 겸 동화작가 전이수 군의 일기 ‘우태의 눈물’이 화제다. 일기에는 동생의 생일을 맞아 한 식당에 들어섰지만 ‘노키즈존’으로 바뀐 가게에 발길을 돌려야만 했던 가족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동생의 눈물을 본 전이수 군은 “어른들은 아이들이 없어야 편안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아이들이 가게에 들어올 수 있는 권리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동 혐오라는 현상을 아동에 대한 물리적 학대로만 이해한다면, 현대 사회의 특징인 아동 배제 기제를 포착하지 못할 수 있다. 우리가 아동을 특정한 속성으로 환원하고 그에 열광하면서도, 그 속성을 벗어난 모습을 견디지 못한다면 어떨까? (중략) 아동의 귀여움은 혈연으로 연결된 가족에 머물지 않고 전국 단위의 ‘공적인 것’으로 소비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정반대로 ‘귀엽지 않은 아동에 대한 거부와 배제로 이어지고 있다.” 위 글은 <창비어린이> 64호에 실린 ‘낭만적 예찬을 넘어서―이미지 시대의 아동을 생각하다’의 일부분이다.

그렇다. 쉽게 말하자면 텔레비전 속 ‘귀여운’ 아이를 지켜보는 것과 한 생명을 돌보며 살아가는 것은 다르다. 아동은 먹고 배설하고, 피와 땀을 가진 ‘축축한’ 존재다. 현대 사회의 공적 공간은 점차 이러한 ‘축축한’ 존재들을 추방시키고 있다. 장애인과 빈자, 특정 인종의 외국인들은 오래전부터 공적 공간에서 손쉽게 추방되던 사람들이었다. 이제는 아동이 그 차례를 맞았다. 공적 공간은 점점 젊고, 건강하고, 세련된 행위 규범을 익힌 존재들만의 세계가 되어 가는 중이다.

우리 어른들은 이제, 아동은 순수무결한 선한 피해자가 아니라, 소수자이면서도 동시에 성장기에 있는 존재로서 서투르고 답답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아동의 부정적인 모습을 인정하면서도 하나의 존재로 존중하려 시도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아이였다.

 
강소미(경상대신문 편집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