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 김정희와 당론 없는 민주당
김유신, 김정희와 당론 없는 민주당
  • 경남일보
  • 승인 2019.05.19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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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를 보면 물기가 조금 묻은 까실까실한 붓으로 그림 전체를 겨우 그린 것 같다. 둥근 창이 하나 있는 소박한 집 오른쪽에 바짝 붙여 소나무 두 그루가 있고, 왼쪽에 잣나무가 두 그루 있다. 소나무에는 이제 늙어서 겨우 옆으로 구부러진 못난 가지 하나에 성근 잎, 몇 장이 매달려 있다. 눈으로도 금방 셀 수 있을 정도이다. 그 곁에 줄기는 똑 바르고, 잎은 싱싱한 젊은 나무가 바짝 붙어있다. 기울어진 늙은 나무를 부축하는 모양이다. 새싹을 틔우고 있는 잣나무 두 그루는 추사가 유배생활에서도 버리지 않고 있는 미래에 대한 희망인 것 같다. 소나무 두 그루는 추사 자신을 나타내고, 잣나무 두 그루는 제자 이상적을 상징한다고 한다.

추사는 그림을 그린 배경으로 세한도서(歲寒圖序)에서 공자가 말한 겨울철의 소나무, 잣나무를 인용하였다. ‘지금 세상은 온통 권세와 이익에 눈이 멀었다’라고 시작하여 공자가 ‘날씨가 추워진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고 하였다. 바로 BC 450년경에 기록된 논어 자한편의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라는 구절이다. ‘세한’이란 추운 계절 즉 겨울을 가리키며, ‘후조’는 시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소나무와 잣나무는 삼국사기 열전에도 나온다. 백제의 공격을 막아낸 김유신에 관한 기록이다. 논어가 씌여진 지 1100여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진덕여왕 원년, 무산, 감물, 동잠성으로 쳐들어오는 백제군의 공격에 신라는 점점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이때 김유신은 부하인 비령자에게 “추운 겨울이 되어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 것을 알게 된다. 오늘 상황이 위급하니 그대가 아니면 누가 힘을 떨치고 기묘한 계책을 내서 군사들의 마음을 격동시킬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면서 적진으로 들어가 전세를 뒤바꿀 돌파구를 만들어 달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비령자는 두 번 절하고 나서 마땅히 죽음으로 보답하겠다면서 백제군 진영으로 달려들어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 이를 본 그의 하인 합절과 아들 거진도 장렬한 전투 끝에 최후를 맞았다. 이에 자극받은 군사들은 사기가 충천하였고 그 여세를 몰아 백제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세한도’에 담긴 정신의 뿌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기록이다.

바로 이 시들지 않는다는 후조(後凋)의 정신은 신라를 거쳐 조선 선비들의 상징이 되었고 국난에 처했을 때나 절개가 요청될 때면 어김없이 조선의 선비들은 언제나 소나무와 잣나무를 생각하였다. 그리고 김유신의 정신은 1200년이 지난 1844년 추사 김정희에 이르러 마침내 ‘세한도’란 그림으로 형상화되었다. 세한도에 담긴 정신이 추사 한 사람만의 감회가 아니라 조선의 모든 선비들의 정신이었다. 추사는 세한도를 통해 바로 이 조선의 정신을 그린 것이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상도 여권인 자유한국당을 탈당하고 민주당에 입당한 사람들이 있었다. 후보들 사이에서 배신자 논란도 있었고 몇 군데에서는 박근혜 탄핵을 반대했던 전력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몸은 비록 민주당에 와있지만 여전히 마음은 무료급식을 반대하고 전교조를 불온시하며 토건위주의 개발논리에 사로잡혀 있는 분들이 있다. 이런 속사정 때문인지 최근 도의회의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관한 당론을 포기한 민주당 경남도당은 스스로 정당이기를 포기했다. 세한도에 등장한 소나무는 지금도 늘 푸르다는 이유로 지조를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미처 잣나무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부터는 잣나무에 대한 대접도 달라져야겠다.

 
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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