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추억을 쌓다’ 기획자 정호윤
'시장, 추억을 쌓다’ 기획자 정호윤
  • 백지영
  • 승인 2019.06.06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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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이 아이엄마가 되는 시장의 나이듦
그 속에 세월 엮는 상인들의 일기장을 쓰다
 


“시장에서 근무하다 보니 자연스레 저 사람은 어떻게 장사를 시작했고, 저 가게는 어떤 곳인지 궁금했어요. 중앙시장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고 늘 생각해 왔는데 기회가 돼 시작하게 됐습니다.”

‘시장, 추억을 쌓다’를 기획한 정호윤(26) 씨에게 책을 쓰게 된 경위를 묻자 이같이 말했다. 정씨는 3년째 진주 중앙시장에서 할머니, 고모와 김밥집을 운영하고 있다. 20대의 그에게 시장은 추억이 쌓이는 삶의 소중한 공간이다. “가게가 오래되다 보니 예전엔 학생이었던 손님이 지금은 갓난아기를 안고 오곤 해요. 그 모습을 보면 ‘추억이 대를 이어 자식에게도 공유가 되는구나’ 싶었죠.”

그는 진주 중앙시장 상인들의 삶에 대한 깊숙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다고 했다. 때마침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삼삼오오 청년 인문 실험’ 공모 소식을 접하고 도전한 그는 최종 100팀에 선정됐다. 공모 당선으로 지원받은 200만원으로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까지 이 취지에 공감한 20대·30대 지역 청년과 함께 진주 중앙시장 상인 인터뷰 책자를 제작했다.

그가 활동하고 있는 ‘꿈꾸는 청년학교 밥꿈’ 동지를 비롯해 대학에 붙여둔 포스터나 사회관계망(SNS)에 올린 모집 글을 보고 자원한 10명의 단원이 ‘사람, 공간, 추억 공작소 나이테’라는 이름으로 의기투합했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진주 토박이는 별로 없었다는 점이에요. 진주 청년들은 다 외지로 나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창원이나 부산 등에서 온 사람들이 주축이 돼 지역을 알아가고 전통시장을 알리자고 모였다는 게 재미있었어요.”
책자 발간 작업은 끝났지만 정씨(맨 왼쪽)는 매주 수요일이면 같은 뜻을 가진 청년들이 모인 ‘꿈꾸는 청년학교 밥꿈’에서 지역 현안을 들여다 보며 지역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순 없을까 치열하게 고민한다.

정씨 역시 진주 출신이 아니다. 거창에서 태어나 부산의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했다. 군대 전역 후 등록금을 벌어볼 겸 진주로 와 할머니와 고모가 운영하던 식당 일을 도운 게 시작이다. 당초 1년만 돕다 부산으로 돌아가 학업을 이어나갈 예정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식당 일이란 게 하나 일이 끝나면 또 다음 일이 기다리고 있어 절대 쉽지 않거든요. 이 많은 과정을 제가 빠지고 나면 그만큼 할머니와 고모가 다 해야 하니까 마음이 쓰이더군요. 그래서 일을 도와드리면서 학교도 다닐 수 있게 진주에 있는 대학으로 편입했어요.”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등교 전에 일을 돕고 학교에 가서 전공인 사회복지를 공부한 다음 다시 돌아와 근무했다. 빠듯한 시간이었지만 고객들과 안면을 트게 되니 장사에 재미가 붙었다. “오래된 가게이다 보니 연세가 지긋한 단골이 많이 계세요. 그분들은 가게가 곧 추억인데, 없어지면 허탈감이 들지 않을까요. 그들의 젊은 추억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힘이 닿는 한 더 열심히 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때가 많아요.”

상인들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 역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다. “사실 여기서 근무하면서도 시장은 낙후됐고, 전통시장 상인은 변화를 싫어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어요. 그런데 인터뷰를 하다보니 이분들이 트렌드에 민감하고 변화에도 개방적이란 점을 알게 됐어요. 한복의 경우 서울에서 유행하는 색상이나 올해 트렌드 등을 정말 빨리 받아들여 제품에 반영하더라구요. 괜히 몇십년간 장사를 한 게 아니구나 피부로 느끼게 됐죠.”

최근 전통시장 경기가 예전만큼 좋지 않은 것도 사실. 젊은 고객 유입이 많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정씨는 “어떻게 해야 젊은 세대가 전통시장을 찾을까 그 해법을 매일 생각하고 고민한다”고 말했다. “수십년째 시장에서 일하는 어르신 중에는 돈을 벌겠다기보다는 내가 해오던 것이니까 유지하겠다는 마음인 분이 많아요. 그런데 몇몇 상인을 보면 세대 교체가 되고 있거든요. 부모님이나 친척이 하던 가게를 자식이나 조카 등이 물려 받곤 해요. 그런 분들은 부모 세대가 하던 방식과는 제품 포장부터 구성까지 다 변화를 줘야 한다고 봅니다.”

두 달간의 노력이 책자로 만들어졌다. 아쉽게도 예산의 문제로 100부밖에 찍어내지 못했다. 기록에 나선 청년들과 상인들이 나눠 가지고 관련 단체에도 몇 권 나누다 보니 남는 게 없었다. “책자를 상인 분께 나눠 드렸을 때 정말 고마워하셔서 뿌듯했어요. 본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준다는 점도 뜻깊은 일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 지금껏 살아오신 추억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됐나 봐요. 저희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눈빛이 초롱초롱한 걸 보면서 ‘이런 얘기를 하고 싶으셨구나’ 느꼈어요.”

정 씨는 ‘사람, 공간, 추억 공작소 나이테’ 라는 이름은 계속 가져가며 기록 작업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다음 목표는 중앙시장 상인 영상 인터뷰 제작이다. 글로는 담지 못하는 상인들의 사투리나 분위기를 영상으로 담아 좀 더 생생하게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했다.



 
20대·30대 지역 청년들이 모인 ‘진주중앙유등시장 청년기록단’에는 특이하게도 진주 출신보다 외지에서 진주로 와 지내는 이가 더 많았다. 지역을 알아가고 전통시장을 알리자는 취지로 다 함께 의기투합했다.


한발 더 나아가 중앙시장 2층 비단길 청년몰 복도에서 중앙시장 상인들을 위한 문화행사를 정기적으로 열고 싶다는 바람도 밝혔다. 정씨는 “상인들이 영화는 보고 싶지만 가게에 매여 일하느라 영화관에 못 가는 경우가 많다”며 “청년 상인과 기존 상인이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선정해 다 함께 문화적으로 교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실 이 바람은 꽤 구체적이다. 영화 시작 전 10여 분의 광고 시간에 ‘영상 인터뷰’를 비롯해 시장에서 일하는 모습이나 소소한 재미를 촬영해 틀어주면 좋을 것 같아 한창 구상 중이다.

그는 앞으로의 일이 설레고 또 기대된다고 했다. 함께 책 발간을 작업한 동료들의 변화에서도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이번 작업에 함께 한 진주 토박이들은 중앙시장은 항상 봐왔던 일상적이고 당연한 공간이라 여겼는 이번 작업을 통해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됐나봐요. 요즘은 마트보다 시장을 더 찾게 됐다고 해요.”

정씨는 매주 수요일 저녁이면 같은 뜻을 가진 청년들과 지역 현안을 들여다보며 지역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순 없을까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는 “사회복지 기관에 취업하지 않았다고 해서 사회복지 일을 하지 않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지역 재생 등 현장에서 뛰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회복지 마인드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가 내딛는 새로운 도전, 걷다 보면 좌절의 순간도 경험하게 되겠지만 그래도 그 길을 끝까지 나아가고 싶다고 했다.

자신처럼 도전하는 누군가를 향해 격려의 말을 건네는 정씨의 눈빛에는 힘이 넘쳐 보였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많은 사람이 꿈꾸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 역시 연고가 없는 진주에 와서 편입하고 지금까지 활동한 모든 게 다 도전이었는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그대로 끝나지 않고 언제나 거기서 새로운 도전의 발판이 마련됐어요.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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