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의 백설기
현충일의 백설기
  • 경남일보
  • 승인 2019.06.0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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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작가)
윤위식

10·26이후 80년의 봄은 전국이 술렁거렸다. 신군부의 출현으로 서울의 봄이 군홧발에 짓뭉개지며 곧 이은 5·18로 나라의 앞날이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백척간두의 공포와 불안속의 혼란기였던 현충일 아침, 밥상머리에서 내쉬던 집사람의 한숨소리는 안도의 한숨이었다.

네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남산 충혼탑 앞의 현충일 추념행사에 가겠다고 했더니 얼굴빛이 밝아지며 터져 나온 한숨이다. 중앙당의 진로를 좀 더 지켜보기로 하고 신민당 당사로의 출근을 하루 빠지기로 한 것인데 그나마도 그 하루가 안심이 되었던 모양이다.

집에서 100m남짓한 거리에서 산길 계단을 오르면 남산 충혼탑이다. 검정리본이 달린 하얀 조화를 아들의 가슴에 달아주고 과일과 백설기를 한 가득 차린 제물 앞에서 식순에 따라 참배하며 소복차림의 전몰 유가족들의 젖어가는 손수건도 지켜보며 조총소리에 놀라지 말라고 아들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끄트머리의 자유 헌향시간에는 아들과 나란히 서서 향을 올리고 또 한 번의 묵념을 한다. 식을 마치니까 아들의 손에 하얀 비닐봉지가 여러 개다.

전몰 유가족들이 준 백설기랑 무공훈장을 단 참전용사들이 준 과자봉지들이다. 일찍부터 책을 읽어서 현충일이 뭔가를 아는 녀석이라 국가는 국민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우리가 참석하는 것은 국가의 주인이기 때문이라고 일러주었더니 아들은 다음해부터 두 살 아래인 여동생의 손을 잡고 충혼탑이 상평동 솔밭공원으로 옮겨가기까지 해마다 남산 충혼탑 앞의 추념식에 참석을 했다. 원호가족은 아니지만 집사람이 시간 맞춰서 챙겨 보낸 것이다. 백설기는 꼬박꼬박 받아왔다. 아비의 몫이라며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오면 백설기 한 조각은 남겨져 있었다. 아비는 개헌투쟁을 한답시고 구 부산상고 공터와 대구중앙공원 집회에서 밤늦게 돌아와 남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집사람은 나를 한참이나 빤히 쳐다본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아내의 눈길을 피해야 했다. 원망의 눈빛이 안타까움의 눈빛으로 변하기까지는 짧지만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최루탄 가루를 몇 번이고 털어냈는데도 잠이 든 아들과 딸이 재채기를 하며 깨어나서 부엌이 딸린 단칸방이라 얼른 부엌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들어왔다. 아비 몫이라고 아들이 백설기를 내놓았다. 아들은 호국영령 앞에 분향을 하고 아비는 최루탄가루를 하얗게 뒤집어써야 했던 그 해 유월의 현충일 백설기는 유난히도 목이 메었다.

 
윤위식(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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