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석상(石像) 오백나한
[경일포럼]석상(石像) 오백나한
  • 경남일보
  • 승인 2019.06.1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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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나는 지난 일요일에 십 수 년 전에 강원도 영월의 창령사 터에서 발굴했다는 오백나한상 전시회를 보러 갔다. 일언이폐지하면, 화강암 석상의 오백나한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 밀려온 사람의 물결에다 들입다 묻는다. 너희로부터 너희는 정말 자유로우냐고, 너희에게 있어서 너희 세상은 진정 평화로우냐고.

그러면, 글의 시점을 그날로 되돌려본다.

이 오백나한상을, 나는 지금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두건을 쓰거나 가사를 두르거나 홀(笏)을 들면서 서 있거나 하는 것은 한갓 꾸밈과 차림새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표정이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면서 무심(無心)의 돌에도 갖가지 표정이 드러나 있네,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표정들 하나하나가 한결같게 비슷한 것 같아도 자세히 들어다 보면 하나도 같은 모습이 없다.

고려 시대의 석공은 산속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돌을 줍고 주워서, 또 주운 돌들을 주물고 주물어서 오백나한의 희로애락을 한껏 빚어내었다. 무명의 그는 무심의 돌에다 무언가 마음의 파문을 불어 넣고 새겨놓으려 하였으리라. 오백나한은 입을 헤 벌리기도 하고, 고개를 한쪽으로 비스듬하게 갸울이거나, 눈을 짐짓 내리 깔면서 심각하고도 근엄한 표정을 짓는다. 또는 서로 다른 감정의 실타래를 풀어낸다. 한편은 감탄과 비탄에 빠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찬탄과 한탄을 드러내기도 한다.

오백나한은 붓다의 제자들인 이른바 아라한이었다. 이 오백 명의 나한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역사 인물은 가섭(迦葉)이다. 스승인 붓다와 함께 ‘염화시중의 미소’라는 고사를 창출해낸 현자였다. 어쨌든 오백나한은 한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고자 한 자들이었다. 비승비속의 경계에서 기웃거리거나 머뭇거리거나 하던 한 시대의 성도(聖徒)였다. 이제는 땅속 깊이에 숨겨져 오랜 세월의 어둠을 견디어 있다가 세상의 무대 위에, 이제야 비로소 세워진 연기자들이랄까? 온갖 표정과 감정을 변환(變幻)하는 배우 집단이라고 비유라면 어떨까?

석상의 오백나한은 좀 못 생긴 듯해도, 이제 느긋이 여유롭고, 지긋이 평화롭다. 저 화강암의 물질적 상상력은 박수근의 그림이 보여준 색의 질감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물씬 전해오고 있다. 이 뭇 석상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감회가 치솟아 오른다. 또 당나라 시대의 한 유명한 시인의 시구도 떠올려진다.

물의 본성이 고요하고,/돌도 본디 소리가 없네./어찌 둘이 서로 부딪치면,/빈산 놀래는 우렛소리 내나.

평소에 조용한 사람과 또 과묵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두 사람이 서로 만나 세상살이의 격론을 들입다 일삼는다고 하면, 세상 사람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까? 사물과 사물이 서로 융합하면, 그 사물들은 본래의 품성을 상실하면서 새로운 힘과 에너지를 창출한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 그 옛날 석공이 아무런 의미조차 없는 돌을 주물어서 석상을 만들어 후세에 남겼다. 돌은 돌스러움의 물성을 넘어 고려와 조선의 옛사람에게는 일종의 기복신앙이었지만 나한신앙의 형성에 기여했고, 오늘날의 우리에겐 시대와 시대를 이어주는 소통과 공감의 예술품으로 전해주었다.

내가 박물관에 간 그날, 박물관에서 엄청난 크기의 마곡사 괘불도 선보였다. 매우 화사한 조선 불화의 진수. 이처럼 잘 알려져 있은 우리 문화재는 우리의 가슴을 벅차게 한다.
 
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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