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교육칼럼]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 경남일보
  • 승인 2019.06.1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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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택(前 창원교육장)
교직이 청소년들에게는 직업 선호도 상위권(2019.6.2. KBS 뉴스)에 든다고는 하나 그것이 직업의 높은 안정도 때문이며, 교직은 미래의 유망 직업에 들어가지 않는다(2019. 1. 29. SBS 취재파일). 한편, 명예퇴직 희망자는 갈수록 느는데 그 요인으로 생활지도의 부담을 드는 등 교직 만족도는 낮아진다고 한다.

어느 시기라고 못 박을 수는 없지만 필자의 선배 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 필자보다도 한 참 뒤의 교사들까지도 교직을 특별하게 받아들였다. 박봉을 원망하지 않았고, 열악한 교육환경을 탓하지 않았다.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었지만 1시간 일찍 출근하는 것은 당연하였고, 퇴근 시간은 있으나마나였다. 글을 깨치지 못한 아이, 셈이 느린 아이는 방과 후에도 붙들어 두었고, 체육 등 특별활동에 진이 빠졌으며 행동이 바르지 못한 아이는 엄하게 다스렸다. 교직은 성직이라는 말에 고무되었고, 정년 65세는 다른 직종의 공무원과 비교하여 자긍심을 갖게 하였다. 이러한 교직에 변화의 거센 바람이 불어온 것은 정보화사회의 도래라고 할 것이다. 그 중에서 학생 체벌 금지는 우리 교육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정부의 학생 체벌 금지는 언론을 통하여 이슈화되었고, 기성 교단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지난날의 교육방식이 모두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벌 금지로 대표되는 지난 시대의 교육 부정은 교사들로 하여금 적극적 교육활동을 위축시켰다. 심지어 무사안일을 조장하고 몸보신 잘하는 소극적인 교육활동의 교사가 오히려 현명하게 평가받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문제학생을 지도하는 교사를 향해 관리자가 ‘적당히 해라. 네 자식도 아닌데….’라는 말까지 하였다. 체벌이 문제가 되면 관리자도 곤욕스런 일을 당하니 충분히 짐작되는 상황이다.

체벌을 옹호하고 미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난 시절 열정을 다하여 학생을 가르친 교직활동을 부정하는 것으로 비쳐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병주는 소설 ‘지리산’에서 교육은 ‘바른 교육’과 ‘가능한 교육’이 있다고 하면서 모든 조건이 구비되면 교육다운 바른 교육을 할 수 있지만, 그러한 교육환경을 갖추지 못해도 가능한 교육을 해야 한다고 설파하였다. 천막이 교실을 대신하였고 깨진 유리병으로 렌즈의 원리를 가르치는 ‘가능한 교육’에 성공하였기에 우리나라는 산업화도 이루었고 정보화도 성공한 것 아닌가?

지금 생각하면 참 아쉽다. 이렇게 할 수는 없었을까? ‘한강의 기적이라는 산업화를 이루기 위해 일제식 주입식 교육을 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그 성과로 우리는 민주화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교육도 달라져야 한다’라고. 그런데 이러한 공감과 소통의 과정을 생략하고 교원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은 결과 소명과 책임을 다하는 적극적 교육이 위축된 것 아니냐고 말하는 것이다.

사회는 가파르게 변하고 있다. 로봇의 인간화로 표현되는 ‘현실이 된 미래’인 오늘의 교육도 안팎으로 큰 변혁을 요구하는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교육은 사회와 공감하고 소통하면서 준비하고 대응해야 한다. 다행히 지금 학교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가르치는 일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해하는 교사들이 여전히 많다고 한다. 교수방법을 혁신하고 아이를 사랑하는 적극적 교육이 그 방책일 것이다. 방관이나 소극적 대처는 학생을 존중한다는 말로 포장할 수 있지만 이것처럼 무지한 무관심은 없다. 교사가 열정을 다할 때 학생은 의미있게 성장한다. 교사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그 답은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임성택(前 창원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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