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획] 그날을 기억하며-진주성 2차 전투(7)
[특집기획] 그날을 기억하며-진주성 2차 전투(7)
  • 임명진
  • 승인 2019.07.1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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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은 피로 물들고 성은 무덤이 됐다
전투 9일째, 동문쪽 성벽이 무너졌다. 무너진 곳은 신북문과 동장대 쯤으로, 동문은 지금의 장대놀이터 부근으로 추정된다.

 

‘황진이 적의 탄환을 맞고 죽자 온 성안이 흉흉하고 두려워했다’-선조실록

29일 날이 밝아왔다. 진주성은 큰 위기에 봉착했다. 최일선에서 군사들을 독려하며 전투를 이끌었던 유능한 장수들이 잇따라 전사한 것이다.

황진을 대신해 급히 장윤이 새로이 순성장에 임명됐다. 장윤 또한 군사들의 신망이 두터워 적임자로 환영받았다.

하지만 그마저 다시 재개된 전투를 지휘하다 총을 맞고 말았다. 장윤은 총에 맞았지만 상처를 싸매고 끝까지 싸우다 전사했다.

위급한 상황에서 황진과 장윤은 수차례 진주성을 위기에서 건져냈다. 그런 뛰어난 지휘관들이 연이어 전사하면서 진주성의 사기는 저하될 수 밖에 없었다.

◇끝내 구원은 없었다

날씨마저 진주성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날 미시(오후1시~3시)에 성의 동문쪽 성벽이 비로 인해 무너졌다. 무너진 성벽 사이로 수많은 적들이 밀고 들어왔다.

여러 문헌을 보면 전투가 벌어지던 시기에 장마와 관련된 기록들을 다수 확인할 수 있다. 장마가 진주성 수성에 일정한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최영창 국립진주박물관장은 “장마철로 큰 비가 내려 29일 동문 쪽 성벽이 무너졌다는 기록이 장마의 영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기록인데 귀갑차를 활용한 일본의 공성 전략과 장마로 인한 지반약화 등이 결합되어 성벽이 무너졌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하늘이 또 돕지 않고 장마가 열흘을 계속하여 성가퀴가 무너져서 황진, 김준민이 탄환에 맞아 죽자 여러 군사가 낙담한데다 적들은 여러가지 꾀를 내어 기어이 함락시키려고~(중략)’ -쇄미록

일본군의 공격이 계속됐다. 성의 동문을 지키던 김해부사 이종인이 병사들과 함께 백병전을 치렀다. 활을 놓아두고 창과 칼을 들고서 죽인 적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하지만 열흘 가까이 굳건했던 진주성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성의 서북문을 지키던 수비 병력이 마침내 적의 공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밀리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조선군을 이끌고 마지막까지 분전하던 김해부사 이종인마저 적의 탄환에 쓰러졌다.

김준형 경상대학교 역사교육과 명예교수는 “이종인과 황진, 장윤 등 유능했던 현장 지휘관들이 하나 둘 전사한 것이 타격이 컸다. 이종인은 일본군의 공격이 가장 극심했던 동문이 무너지자 쳐들어온 일본군을 맞아 결사항전으로 물리쳤다. 그 사이 적들이 다시 신북문 쪽을 집중 공격해 진주성 내에 난입했고, 결정적으로 이를 막지 못해 전세가 기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노련한 지휘관의 전사, 그리고 무너진 성벽, 진주성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적은 죽여도 끝없이 밀려 왔다. 처절한 싸움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일본군이 포위망을 좁혀 오자 의병장 김천일, 경상우병사 최경회 등은 최후를 직감했다.

이제 주변의 군사도 얼마 남지 않았다. 김천일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가 끝까지 기다렸던 구원병은 오지 않았다.

김천일은 그의 아들 김상건과 서로 끌어안고서 남강으로 몸을 던져 죽음을 택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

진주성 임진대첩 계사순의단에 새겨져 있는 성이 함락될 당시에 일본군의 양민학살 만행 장면이 새겨져 있다.


◇무너진 진주성

성이 무너지고 불타기 시작했다. 마지막 남은 조선군과 의병들이 쓰러지자 진주성의 수많은 민간인들이 적의 표적이 됐다.

도처에 시체가 널리고 남강이 그들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들었다. 일부는 일본군에게 죽느니 자결을 택하겠다며 스스로 남강에 뛰어들었다.

문헌에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으로 적고 있다.

‘감사 김늑이 이정을 시켜 진주성을 조사하게 하였는데 성 안에 쌓여 있는 시체가 1000여 구이고, 촉석루에서 남강의 북안까지 쌓인 시체가 서로 겹쳤으며 청천강에서부터 옥봉리, 천오리까지 죽은 시체가 강 가득히 떠내려갔다’-선조실록

선전관 유대기가 일본군이 물러가고 찾은 진주성에서 올린 장계에는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이미 썩어서 알아볼 수가 없으므로 가족들이 다만 죽은 사람이 평소에 있던 옷만을 가지고 와서 초혼해 가고 있습니다. 사졸들의 시체는 현재 수습하며 매장하고 있지만 시체가 산처럼 쌓였기 때문에 마치기가 쉽지 않을 듯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진주성 2차 전투가 임진왜란 7년 전쟁을 통틀어 가장 참혹한 전투로 기억되는 것은 6만에 달하는 민·관·군이 전몰했기 때문이다. 서부경남의 수많은 피난민들이 일본군을 피해 진주성으로 몰려들었다.

6만 명이라는 피해규모에 대해서는 기록들이 엇갈린다. 당시 진주성의 규모를 짐작해 보았을 때 과연 6만여 명을 한꺼번에 수용이 가능했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도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성 안에 죽은 자가 6만여 명이었다고 전하는 장계에서 ‘어떤 이는 8만여 명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3만여 명이라고 한다’는 내용을 부기하고 있다. 상당수 주민이 탈출에 성공했다는 기록들도 있다.

일본 측 자료인 ‘다이코기’와 ‘도사모노가타리’에는 일본군에 의해 살해된 자가 1만 5300명이며, 이밖에 바위에서 떨어지거나 강에 빠져 죽은 수가 2만 5000여 명에 달한다고 해 모두 4만여 명이 참화를 당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진주성 임진대첩 계사순의단에 새겨져 있는 의기 논개가 적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하는 장면.


최영창 국립진주박물관장은 “여러 자료를 종합해 볼 때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상당한 인명피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동원된 병력과 피해 규모를 보아도 진주와 진주성이 당시 임진왜란에서 얼마나 전략적으로 중요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절대적인 병력과 화력의 열세에도 진주성은 최선을 다해 싸웠다. 무려 10만의 대군을 맞아 9일간 항전을 벌이며 그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안겼다.

진주성의 사람들은 끝까지 구원병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리고 1차 전투에서처럼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성벽이 무너지는 진주성 최후의 순간에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김준형 경상대학교 역사교육과 명예교수는 “진주성 2차 전투는 만약 외부의 지원이 있었더라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외부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9일 동안 버티면서 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전투”라고 평가했다.

진주성 인근의 조선군과 명군은 전투를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성이 함락되자 조선조정에서는 진주성 구원을 외면한 최원과 선거이 등의 조선군 장수에 대한 처벌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들이 실제로 처벌을 받았는지는 기록이 없으나 진주성에 구원이 없었다는 점이 패전의 주요 원인이라는 시각은 공통된 생각이었던 듯 싶다.

‘징비록’을 지은 유성룡은 진주성 전투의 패인에 대해, 적의 규모가 컸음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지만 우리 측의 대응 잘못도 지적했다.

그 중 △진주성 목사 서예원의 대처가 미비했다는 점, △지휘체계가 일사분란하지 못한 점, △적이 당도하기 전 함부로 나아가 진을 치고 있다가 후퇴해 오히려 적의 사기를 돋운 점, △진주가 함락 되기 전에 의령, 삼가, 단성, 진해, 고성, 사천 등지가 모두 막혀 원병의 길이 막힘 점 등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유성룡은 이렇게 적었다.

‘진주 사람들이 밤낮으로 구원병을 갈망하며 하늘에 호소하고 빌었으나 끝내 한 명의 구원병도 오는 자가 없어 드디어 함락되었고 온 성안이 도륙된 참상은 차마 말할 수 없습니다. (중략) 최원, 선거이 등의 장수가 수수방관해 모두 흉적의 칼에 죽게 하였다며 군율로 단죄해야지 어찌 용서해서야 되겠습니까’

임명진기자 sunpower@gnnews.co.kr

 

촉석정충단비는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장렬하게 순국한 삼장사 김천일, 황진, 최경회 및 군관민의 영령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충단의 비석이다. 촉석루 동쪽에 세워져 있다.
촉석정충단비는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장렬하게 순국한 삼장사 김천일, 황진, 최경회 및 군관민의 영령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충단의 비석이다. 촉석루 동쪽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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