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물줄기 따라 ‘가야 연합’ 존재했다”
“남강 물줄기 따라 ‘가야 연합’ 존재했다”
  • 백지영
  • 승인 2019.07.11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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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과 영남 경계의 가야’ 주제 제2회 가야사학술심포지엄 개최
지역정치체 인적·물적 자원 교류…“대가야·소가야 공존” 주장 제기
남강 상류에 있었던 가야 지역정치체가 물줄기를 따라 인적·물적 자원과 정보를 교류하며 ‘연합’ 또는 ‘연맹’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11일 순천 에코그라다 호텔에서 제2회 가야사 기획학술심포지엄 ‘호남과 영남 경계의 가야’를 공동으로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강동석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2부 ‘남강 유역의 가야 문화’ 중 ‘남강상류 가야고분군의 입지와 분포 패턴’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남강상류의 산청 평촌리·옥산리 유적에 대가야·소가야 양식 토기가 공존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강 연구관은 유구·유물론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GIS를 활용해 경관고고학적 측면에서 가야유적의 입지·분포·공간조직에 관한 상관관계를 밝혔다.

분석 대상으로 삼은 남강 상류는 5세기 중반~6세기 초반 대가야의 세력권 확대와 소가야의 독자적 지배체제가 시기에 따라 복잡하게 나타나는 장소다.

당시 남강 상류권에는 산청 생초고분군, 함양 백천리 고분군,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 월산리 고분군를 중심고분군으로 한 대가야 지역정치체와 산청 중촌리 고분군, 합천 삼가고분군으로 대표되는 소가야 세력이 공존했다.

강 연구관은 “각 지역정치체는 국지적 차원에서 경관의 의도적인 조직화를 통해 수장권력의 차별화와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정치권력 확대전략을 구사했다”며 “분석 결과 각각의 중심고분군은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공동체 구성원의 생활공간에서 상시로 노출돼 가시성 확보에 유리한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 “생초·중촌리 고분군은 하천을 경계로 생활공간과 별도로 분리돼 독립된 입지를 보였다”며 “이러한 입지적 특징은 고분군을 매개로 경관 자체를 정치권력화해 권력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수장층의 경관 조성전략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된다”고 덧붙였다.

강 연구관은 “남강 상류 중심고분군은 대부분 가시권을 공유하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며 “이는 각 지역정치체가 독립된 영역을 차지하며 공존하고 있었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하승철 경남발전연구원 박사는 ‘남강 상류 가야 고분군의 축조 세력’을 주제로 진행한 발표에서 “남강 상류에 전개된 대가야 고분 문화의 확산은 독자성을 지닌 정치 세력 관계에서는 발생하기 어렵다”며 “고령을 중심으로 각지의 정치 세력이 결집해가는 과정은 대가야 영역의 확장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조성원 부경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원은 ‘남강 상류 가야토기의 생산과 유통’에 관한 발표에서 “남강 상류는 수계마다 소비유적이 분포하고 있고, 대 양식권이 교차해 토기의 생산과 유통을 검토하는데 매우 적합한 대상”이라며 “소지역 단위의 연구를 통한 상향식 검토와 토기 생산·유통 경계 지점에 대한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학술심포지엄은 고고학과 문헌사학 분야에서 그동안 이뤄져 왔던 호남과 영남 경계의 가야사와 관련한 쟁점들을 깊이 있게 논의해 가야의 영역과 확장·교류 과정을 다각적으로 이해해 보고자 마련됐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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