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그날을 기억하며-진주성 2차 전투(完)
[특별기획] 그날을 기억하며-진주성 2차 전투(完)
  • 임명진
  • 승인 2019.07.15 17:1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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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패전으로만 기억되는 진주성 2차 전투
일본 야욕 물리친 성과 지나치게 간과

진주성의 영웅적 활약 잊지 말아야
진주성 일부 시설 고증 거쳐 복원 바람직


진주성 2차 전투는 임진왜란 7년 전쟁동안 가장 참혹했던 전투로 기억되고 있다. 전투에서 패전했다는 이유로 그동안 2차 전투의 성과는 간과되어온 측면이 많았다.

하지만 진주성 2차 전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위대한 전투였으며 또한 전략적 승리였다. 수많은 의병과 군사들, 그리고 주민들이 압도적인 일본군을 맞아 열흘 가까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들의 영웅적인 활약은 호남 진출이라는 일본의 야심을 기어코 무너뜨렸다.

이에 진주성 2차 전투의 참된 의미를 다시 조명해 보고 향후 재평가를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지, 지역의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들었다.

전문가들은 진주성 전투의 재평가 작업과 함께 지역관광 활성화를 위해 외성과 남문 등지의 진주성의 일부 복원에도 지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김준형 경상대학교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2차 진주성 전투성과 제대로 평가해야”

김준형 경상대학교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김준형 경상대학교 역사교육과 명예교수는 “진주성 2차 전투의 결과 성이 함락당한 사실에만 너무 지나치게 몰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성이 함락당하고 6만 민·관·군이 몰살당했다는 것만으로 진주성 2차 전투의 의미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명예교수는 “진주성 2차 전투를 임진왜란에서 가장 참혹한 전투라고 하지만 결국은 일본의 야심을 두 번이나 꺾어버리는 엄청난 전과를 올린 곳이 바로 진주성”이라면서 “전투에서는 졌지만 전쟁에서는 이긴 전투”라고 말했다.

호남까지 장악해서 단번에 전세를 역전시키겠다는 일본의 의지를 무참히 박살내 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외부의 구원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무려 9일 동안이나 항전을 했다. 일본은 조선에 파병한 사실상 전 병력인 10만 대군을 가지고도 쉽사리 함락시키지 못했다. 일본도 엄청난 손실을 입었고, 더 이상의 작전을 펼치기가 어려워지자 호남 공략을 포기하고 다시 본거지가 있는 부산 방면으로 철수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현재 발굴조사가 한창 진행 중인 진주대첩 광장 조성부지와 관련해서도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그는 발굴된 일부 옛 유적에 대해서는 진주성과 연계해 복원 및 보존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 명예교수는 “두 차례에 걸친 진주성 전투에 대해 지역에서 그 의미와 역사적 교훈에 대해 보다 체계적인 학술연구와 복원 노력이 더해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진주외성과 남문지로 추정되는 흔적이 잇따라 발굴되는 등 진주성의 일부 상징적 시설물의 경우 철저한 고증을 걸쳐 제대로 보존하고 복원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도 밝혔다.

특히 1, 2차 전투 당시 가장 격전이 벌어졌던 동문의 복원도 시급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김 명예교수는 “전체 진주성의 복원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상징적으로 남문이나 동문 등의 경우 일부 상징성이 있는 유적과 사실은 복원해야 한다고 본다. 이와 함께 진주대첩광장 조성은 진주성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전문가와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서 차근차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최영창 국립진주박물관장

◇진주성의 보전과 유적 활용 대책 강구해야

최영창 국립진주박물관 관장

최영창 국립진주박물관장은 “결과적으로 성이 함락되긴 했지만 2차 진주성 전투가 일본의 조선침략 전쟁을 실패로 돌린 요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 전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남아 있는 진주성의 문화재 보전과 활용에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진주성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그 원형이 크게 훼손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 진주성의 해자에 해당하는 대사지는 일제강점기 당시에 성벽의 돌과 구릉지의 흙으로 메워지고 그로 말미암아 진주성 성벽은 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현재 남아 있는 진주성벽의 안전한 보존관리 대책을 수립하고 흔적만 남겨진 진주성 남문지 위에 성문을 새롭게 복원해 공개한다면, 진주 1000년의 역사와 문화를 가장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관광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진주성의 유적과 복원정비사업에도 각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최 관장은 “그나마 진주성 내성은 복원정비사업을 거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 있지만 성벽의 대부분은 20세기 후반에 복원됐다”면서 “이번에 확인된 성벽은 진주성 외성의 본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현재 진주대첩 광장 조성부지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는 다양한 유적이 확인되고 있다. 최 관장은 “고려시대 토성에서부터 고려 말 조선 전기의 석성, 조선후기에 개보수한 성벽 등은 진주성의 변화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특히 조선후기의 성벽은 길이 약 110m, 최대 높이 6m 정도로 잘 남아 있어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진주성내에 위치한 국립진주박물관은 진주성 밖으로의 박물관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진주박물관의 오랜 숙원사업이기도 하다.

최 관장은 “문화재 안전과 관람객 접근성 문제, 확장성에서 현 부지로는 한계가 있어 성 밖으로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임진왜란 유일의 특성화 박물관으로서 향후 진주와 서부경남, 임진왜란과 동아시아, 서·남해안의 문화교류라는 큰 주제를 중심으로 브랜드화를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동욱 진주문화사랑모임 상임이사
◇진주성,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강동욱 진주문화사랑모임 상임이사

강동욱 진주문화사랑모임 상임이사는 “진주성 전투는 민·관·군이 목숨을 돌보지 않고 수많은 일본군과 싸워 지금의 역사에 남는 진주성 전투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여건이 대승을 거둔 1차 진주성 전투와는 확연히 불리했지만 전투가 시작되자 물러섬 없이 적에게도 엄청난 피해를 안겼다는 것이다.

강 상임이사는 “당시 진주성 2차 전투는 진주를 구원하기 위해 창의사 김천일, 의병장 고종후 등이 많은 의병이 진주성에 입성했다”면 “비록 전투는 성이 함락되면서 무수히 많은 인명피해를 남겼지만 일본군 역시 엄청난 희생과 물질적 손실로 철수하고 말았으니 호남진출 봉쇄라는 당초 목적은 달성됐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진주성 2차 전투는 1차 전투인 진주대첩 못지않은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진주성에서 순절한 삼장사와 의기 논개 등의 충절은 당시 많은 조선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을 것이고, 이것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요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진주성은 진주시민들의 자긍심을 나타낼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상임이사는 “현재 한창 발굴조사가 진행 중인 진주대첩광장 조성사업은 진주시민들의 여론을 적극 수렴해서 과거와 미래가 공존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진주성의 바람직한 모델로 그는 이탈리아의 도시, 로마를 예로 들었다. 기원전에 만들어진 로마는 옛 유적과 유물, 현대 건물이 공존하고 있는 대표적 도시로 알려져 있다.

강 상임이사는 “천년 역사를 간직한 도시인 진주는 장차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로마와 같은 도시를 본보기로 적극적인 벤치마킹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 대첩광장 부지에서 발굴된 유적 등의 보존과 개발방법에 대해서는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 상임이사는 “진주성 2차 전투는 패배가 아닌 진주의 민관군이 힘을 합쳐 일본의 야욕을 꺾은 엄청난 성과를 올린 전투로 기억되어야 한다”면서 “진주의 아이들이 진주성 전투의 참된 의미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역사회가 다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명진기자 sunpower@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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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 2019-08-15 07:49:33
이런 말같지도 않은 아전인수질은 삼가하세요!

그 진주성 2차 전투는 해서는 안 되는 전투였고, 무리한 용병과 그릇된 아집으로 결국 6만 명의 죄없고 힘없는 백성들만 죽어나간 최악의 전투입니다! 참패가 아니라 참상이며 비극입니다.
당시의 중국군이나 권율과 곽재우 등이 왜 진주성을 외면했는지 부터 대가리에 입력하고 입을 놀리세요.
그 진주성2차에서 순국한 장수나 의병장은 말이 좋아 순국이지 실상은 무고한 양민 수만을 학실시키게 방조한 주역이며 공명심에 눈이 먼 독선적인 고집불통의 패장들입니다.
작전 싱 후퇴도 모르는 그야말로 앞뒤가 꽉막힌 바보들의 행진이며 일본의 원폭 쳐맞은 것과 동급의 대재이앙과도 같은 꼬라지가 된 겁니다.
ㅡ 그 진주성에서 군대를 빼고 양민은 피난을 시켰어야 했다.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