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는 기지 목표가 따로 있나”
동아수산 김영주 아재
이른 오전에 찾은 중앙시장은 한낮이나 늦은 오후와는 또 다른 활기를 띠고 있었다. 수산시장은 사람들이 오갈 수 있도록 가운데 통로를 비워두고 양 옆으로 죽 점포가 처져 있는 구조다. 생선 도매 장사를 하는 동아수산 김영주 아재(57)의 점포는 수산시장의 거의 끝자락에 있었다. 소매상인이나 난전에서 장사하는 할머니들이 그의 주된 고객이다. 외상을 하고 뒷날 돈을 받는 식으로 거래하고 있다.
장사를 시작한 지 약 20년이 된 김영주 아재는 주로 부산과 제주도에서 수산물을 가져온다. “부산에 우리보다 더 큰 도매상이 있거든. 거기서 싣고 오기도 하고, 제주도에서 경매 올라오는 물건을 중개무역 통해서 시세대로 거래하기도 하지. 요새는 직접 가진 않애. 오래 거래하다 보믄 일일이 이야기 안 해도 척척 다 알아듣는 거야. 그렇게 올라오는 물건을 파는 기고”
김영주 아재는 오전에 장사를 마치고 나면 부산과 제주도에 각각 물건을 주문하며 내일 팔 생선을 준비한다. 그는 수산시장이 옛날과 비교했을 때와 비교해 달라진 점이 몇 가지 있다고 설명했다. 먼저 수산시장에서 더는 경매를 진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옛날에는 여기서 경매를 했었지. 근데 경매 안 한 지 20년도 넘었어. 요새는 경매는 안 하고 판매만 하지”
또한 전에 잡히던 생선이 잘 잡히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예전에는 명태가 많이 잡혔는데 요즘엔 거의 없다고 한다. 오징어도 마찬가지다. “명태는 거의 다 러시아산이야. 예전에는 우리나라 원양어선이 러시아 근해에 가서 명태를 잡아 왔는데, 요새는 그리도 몬하고 마 러시아에서 수입해가 온다고 보면 돼” 전성기가 언제였노라고 묻자 그는 “고기 많이 나던 20년 전만 해도 괜찮았다”고 답한다.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김영주 아재는 허허, 하며 웃었다. “요즘 애들 자기가 알아서 잘하고 자기가 갈 길도 잘 찾던데 뭔 말을 하겠노”
그렇지만 다니던 직장을 중간에 그만두는 일이 잦은 요즘 행태를 보면 힘든 일은 마냥 피하려고만 하는 것 같아 걱정이 들기도 한다. “힘든 일은 외국인한테 다 줘버리는 것 같아. 옛날엔 외국인을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했는데, 요즘엔 외국인들이 장 보러 시장에 많이 오거든. 그만큼 힘든 일은 안 할라 카는 거 아니겠나”
김영주 아재의 새해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그저 지금만 같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아, 그냥 사는 기지 뭐, 목표가 따로 있나. 고마 이대로 건강하고 지금 장사하고 있는 거 현상 유지하는 기지. 잘 아는 것에 도전해도 돈 깨묵는 판인데, 모르는 데 뛰어들었다가는 돈 다 깨묵게 된다”
“장사꾼이 바라는 게 뭐겠습니까”
성덕수산 김형빈 씨
성덕수산 김형빈 씨(38)는 군대를 막 제대한 23살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15년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40년 가까이 수산시장에서 장사를 한 베테랑 상인이다.
형빈 씨 역시 오전에 장사를 마친 뒤 바로 다음 날 판매할 생선을 준비한다. 주로 제철 생선 위주로 국내산 선어(鮮魚)를 취급하는데, 주로 삼천포를 비롯한 전국 포구에서 물건을 가져온다고 한다.
그는 상인들에게 생선을 상자째로 판매하기도 하고, 도매 거래를 하기도 한다. 그의 주된 고객 역시 할머니 소매상들이다. “연세 드신 할머니들이 많이 오시죠. 식당 손님이나 젊은 손님들이 생선을 상자로 사기엔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요즘엔 마트도 잘 되어있는데”
철마다 많이 잡히는 어종이 있지만 특정 시기에는 생선이 전반적으로 잘 잡히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수산시장 상인들을 가장 고민에 빠지게 하는 것은 줄어든 손님이다. “과거에 비하면 손님이 많이 줄었어요. 제가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 땐 시장 바닥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는데 많이 달라졌죠. 아무래도 재래시장이 점점 노후화되고, 수산시장의 주 고객층인 할머니들이나 다른 상인들이 많이 은퇴하시면서 시장의 규모가 점점 작아지더라고요”
그는 시장을 찾는 손님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대형마트를 언급하기도 했다. “손님이 자꾸 줄어드는 건 저희 업종뿐만 아니라 시장의 모든 업종이 그렇죠. 재래시장 자체가 예전과 비교해 규모가 작아졌어요. 지금은 ‘이마트’나 ‘탑마트’처럼 대형마트가 많잖아요. 솔직히 저도 물건을 조금 살 때는 마트에 가서 사고 그러거든요. 젊은 친구들이 시장에 오기에는 힘든 면이 있죠”
형빈 씨 역시 “수산시장에 처음 일을 하러 나왔을 때가 제일 바빴어요. 제가 나오기 전엔 이곳이 더 잘됐었고”라며 가게를 처음 운영했을 때를 전성기로 꼽았다.
새해 목표가 무엇이냐 묻자 ‘장사꾼은 장사 잘되는 게 목표’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전통시장에서 장사한다는 건 힘든 일이긴 해요. 자기가 노력하는 만큼 벌어갈 수는 있지만, 시장에 손님이 많던 이전 시대에 비하면 힘들죠. 이쪽에서 일하려면 본인 스스로 노력을 좀 많이 해야 해요. 부지런해야지 돈을 많이 벌게 되니까 저도 매일 새벽에 일어나고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노력하죠. 그런데 장사가 마음처럼 되는 게 아니에요. 매일 힘들어요(웃음). 그래도 괜찮아요”
글·사진=양청 진주중앙시장 청년기록단원·정리=백지영기자
시장, 이제 더는 낯선 곳이 아니다
양청 중앙시장 청년기록단원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나에게 진주 중앙시장은 조금은 낯선 장소였다. 여태까지 내가 살아온 고장이 아니라는 점도 그러하거니와, 청년 세대인 내가 시장을 접할 일이 비교적 적었기 때문이었다. 가끔 진주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갈 때면 중앙시장이 아닌 건너편 ‘차 없는 거리’를 돌아다녔다. 친구들과 함께 그곳을 누비며 소위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렀다. 중앙시장이 진주 지역에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그 전통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들어보긴 했으나 그것뿐이었고, 시장 자체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에 ‘진주 중앙시장 청년기록단’으로 활동한 것이 더욱 큰 의미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이 활동에 지원했을 때에는 내가 평소 갖고 있던 중앙시장에 대한 얕은 지식 하나로, 막연히 이 시장의 역사와 전통을 취재하고 기록해나가는 활동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사전 조사와 인터뷰 진행을 위해 여러 차례 시장을 방문하며 청년기록단으로 활동하는 우리가 어떤 것들을 기록하고 남겨 책으로 펴내면 좋을지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담고 싶었던 것이 중앙시장의 다양한 모습이었다. 시장의 풍경은 방문한 요일과 시간대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저녁 시간대에는 찬거리를 사러 나온 손님들로 북적이기도 했고 늦은 오후에는 비교적 한산했으며, 이른 아침에는 그날 장사를 막 시작한 상인들의 분주함과 수산시장의 활기로 가득 찼다. 진주라는 지역 내 다양한 청년들이 모여 시장이라는 주제 하나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인터뷰를 위해 상인들을 만나다 보니 시장이 되살아나기 위해선 청년의 관심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 상인들은 더욱 젊은 고객들을 끌어들이는 방안을 모색해보고, 청년들은 때때로 시장에 들러 그동안 알아채지 못했던 시장의 여러 모습과 그 특색을 찾아보는 숙제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곳곳의 숨은 맛집과 군침 도는 먹을거리는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