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야기] 국가대표와 우리나라 꽃(國花)
[농업이야기] 국가대표와 우리나라 꽃(國花)
  • 경남일보
  • 승인 2019.07.2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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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끝난 U20월드컵은 ‘막내형’이라 불리는 새로운 스타 이강인을 탄생시켰다. 그가 보여준 인상 깊었던 장면 하나는 경기 전 아주 우렁찬 소리로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이었다. 각종 행사에서 애국가를 제창하지만 크게 소리 질러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마음속에는 한 번 시원하게 질러보고 싶을 때도 있지만 행여나 내 목소리가 튀어 나올까 싶어 다른 사람과 보조를 맞춰 크지도 작지도 않게 부르는 게 현실이다.

애국가에는 우리나라 꽃 ‘무궁화’가 등장하는데 불현듯 왜 무궁화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역사적 기록을 보면 춘추전국시대에 기록된 「산해경」에서 ‘군자지국 유훈화초조생춘사’라 하여 군자의 나라에 훈화초가 있어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고 하였다. 훈화초는 목근, 순영, 순화 등과 함께 무궁화를 일컫는 말이다. 이로 미루어 보건데 우리나라에 무궁화가 피기 시작한 것은 2천년이 훨씬 넘는 아주 옛날부터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지봉유설」에 인용한 고금주에는 우리나라에 무궁화가 많이 피는 것을 예찬하였고, 「구당서」 신라 전에도 신라가 보낸 국서에 스스로를 ‘근화향’ 즉 ‘무궁화’의 나라로 기록하고 있다. ‘무궁화’라는 말은 고려 중기부터 등장하기 시작하여 조선 말경에 현재의 무궁화로 정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과거에 장원한 사람에게 내리는 어사화에 무궁화를 사용하였고 또한 임금이 베푸는 연회에서는 신하들이 사모에 무궁화를 꽂았는데 이를 ‘진찬화’라 하였다.

무궁화가 본격적으로 국화로 등장, 거론되기 시작한 시기는 개화기이다. 당시 윤치호, 남궁억 등 선각자들은 민족의 자존을 높이고 열강들과 대등한 위치를 유지하고자 나라꽃으로 무궁화를 결의하였다. 당시에 만들어진 애국가 가사에 ‘무궁화 삼천리’라는 구절이 아무런 저항 없이 표현된 것도 무궁화가 우리 민족과 오랜 세월을 통하여 인연을 맺어 온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 민족정신과 문화를 말살하려 했던 일제는 무궁화를 볼품없는 지저분한 꽃이라 경멸하여 격하시켰고, 어린 학생들에게 ‘무궁화를 보면 눈병이 난다’, ‘눈이 먼다’고 가르쳤다한다. 또한 국화(國花)말살정책으로 무궁화를 심지 못함은 물론 심어진 무궁화를 모두 캐내고 그 자리에 벚꽃을 심게 하였다. 이처럼 무궁화는 일제강점기 민족정신을 상징하여왔다. 그러나 광복 후 6.25를 겪고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바쁘게 달려오면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 졌었다.

무궁화는 매일 새로 피고 반드시 그 날에 진다. 또한, 매일 새로운 꽃이 연속적으로 피어 초여름에서 가을까지 백여 일 동안 끊임없이 꽃을 피우는 특별한 개화습성을 가지고 있다. 이른 새벽 태양과 함께 피어나 태양과 함께 지는 무궁화, 질 때 봉오리처럼 곱게 도로 오므라져 송이채 떨어지기 때문에 그 끝맺음이 어지럽지 않고 조촐하다. 한 사람의 인생은 짧으나 민족의 역사는 유구하고 화려하게 피었다가 깨끗하게 끝맺음을 할 줄 아는 생의 철학이 무궁화에 담겨 있다.

모두가 국가대표가 될 필요는 없지만 잠자던 국화 ‘무궁화’가 깨어 날 수 있도록 우리가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으로 이제부터 애국가를 크게 불러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안동춘 경농업기술원 화훼연구소 육종담당 농학박사



 
안동춘 경농업기술원 화훼연구소 육종담당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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